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보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가 있습니다.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명제도 있습니다. 위대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도시국가 로마의 불평등은 무엇 때문에 폭증되었을까요? 이웃 도시국가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싸우다가 자꾸 승리하여 영토가 넓어져서 발생했습니다. 영토가 미디어이고 이것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영토가 넓어지면 Interface가 확장되니, 침략도 잦아지고 로마로부터 거리도 멀어지고 전쟁기간도 길어집니다. 중산층 남자들이 봄에 씨를 뿌리고 나서 로마를 지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전쟁을 나가면 가을에 돌아오지를 못합니다. 여자들만 남은 중산층은 노동력을 빌어야 하고 귀족들에게 빚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자들은 최후에는 노예로 자기 자신을 팝니다.
국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전쟁을 나가 이기고 돌아온 중산층 남자들은 사라진 가정을 만납니다. 더구나 영토 확장은 노예의 대량 공급으로 이어지고 싼 노동 시장이 열리므로 일자리가 사라집니다. 영토라는 미디어의 확장, 즉 인간의 영향력이 미치는 Interface가 넓어지면 인간의 삶 그 자체가 바뀝니다. 미디어의 변화를 보면 삶의 변화를 예측해야 합니다. 공화정이 영토를 확장하여 제국화하고 있다면, 더 이상 국가에 충성하면 안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서울은 어디까지가 서울일까요? 인간의 인식에는 하루 생활권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하러 일터로 나가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삶이면, 하루 생활권은 하루 8시간 일하는 일터와 잠을 청하는 집까지 걸리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1시간 안에 할 수 있으면, 하루 생활권입니다. 서울에 직장이 있다면, 출퇴근 시간 1시간이 가능한 거리에 있는 공간이 서울입니다. 공간은 바꿀 수가 없으니, 바꿀 수 있는 것은 속도입니다. 버스로 1시간 거리, 지하철로 1시간 거리, 에어택시로 1시간 거리, GTX로 1시간 거리, 하이퍼튜브로 1시간 거리는 다릅니다. 내가 어떤 Mobility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나의 서울이 결정됩니다.
Mobility는 인간의 영향력이 발휘되는 공간을 확정하는 미디어이고, 인간 발의 확장입니다. 하이퍼튜브로 통영을 1시간만에 갈 수 있다면, 통영은 심리적으로 서울특별시 통영구가 됩니다. 분당 사람들이 성남 사람으로 지역화되는 것은 싫고 서울 사람이고 싶어서 만든 도로가 분당-수서간 고속화도로인 것처럼.
일하는 공간은 어디까지일까요? 회사에서 내가 일하는 공간은 회사의 지리적 위치, 면적 그리고 건물로 결정됩니다. 여기에서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고 PC 안에서 문서를 작성하거나 FAB 등 작업장에서 현장 업무를 합니다. 왜 이렇게 일하고 있는 걸까요? 일을 정의하는 도구 Tool, 즉 Hardware, Software, Officeware 등이 일하는 방법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Tool은 미디어이고, 미디어는 메시지이고 인간의 확장입니다. Hardware는 인간 육체의 확장이고, Software는 인간 두뇌의 확장이며, Officeware는 인간 관계의 확장입니다.
미디어가 일하는 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에 어떻게 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제합니다. 육체와 두뇌와 관계의 자유는 Tool 즉, 미디어에 구속됩니다. 우물이라는 더 효과적인 도구를 찾기 보다는 물통이라는 도구만 효율화합니다. 혁신을 위해 제일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 미디어를 바꾸는 것입니다.
VDI와 VPN은 일하는 공간을 사무실 뿐만 아니라 가정으로까지 확장합니다. VMI와 Mobile Office는 일하는 공간을 사무실/가정 뿐만 아니라 모든 곳으로 확장합니다. Web Posting은 Officeware의 문서 작업을 PC에서 해방하여 모든 기기로 확장합니다. 무선 인터넷과 메신저를 통한 협업은 인간 관계를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확장합니다.
같은 방법으로 인간은 회사 밖에서도 개인의 정보 인지 공간이 한 국가에서 글로벌 전체로 확장합니다. Home과 Privacy 그리고 Office는 이제 더 이상 현실에 있는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가상 현실이 현실입니다.
시간은 그대로 인데, Node-to-Node 간 Mobility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입니다. 인간이 그만큼 빨라진 거고, 미래에는 물리적인 거리는 점점 변수가 되지 않습니다.
미디어가 바뀌면 사람이 바뀝니다. 그 변화에 늦은 사람은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바뀌는 로마의 중산층처럼 됩니다. 대한민국은 미디어의 변화에 소외된 세대와 미디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세대로 갈립니다. 페친 한 분은 이 현상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오래 살아 남는데, 미디어는 빠른 속도로 변합니다.
미디어는 미래가 현재로 보낸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0년 3월 16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