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법칙에 따르면 시각의 변화, 즉 시간에는 방향성이 없습니다. 시각은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흐르는 것은 시각이나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에 방향성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인식의 결과입니다.
불법은 시각이 존재하는 물리량이라는 걸 인식했습니다. 거래금[去來今] 삼세(三世)는 과거(過去), 미래(未來), 현재(現在)를 뜻합니다. 삼세는 존재합니다. 삼세를 결정하는 것이 인과법입니다. 인이 과거이면 과가 현재이고, 인이 현재이면 과가 미래입니다. 인과법이 작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다고 인식합니다.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비가역성을 엔트로피로 설명했습니다.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변화 방향은 Spontaneous하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시간의 화살을 누구든 피할 수 없습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흩어지는 삶입니다.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할 수는 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육신은 불멸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불멸은 시간을 멈춰서 되지 않습니다. 시간은 존재만 하기 때문입니다. 시간 축을 따라 가며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화하고 사라지는 변화를 멈춰야 합니다. 인과와 엔트로피를 벗어나는 세상은 지금 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인은 변하는데 나는 변하지 않는 세상은 없습니다. 변하지 않으려면 모두 변하지 않아야 하고, 변하려면 모두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은 변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변화와 무변화가 동거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윤회[samsāra, transmigration, reincarnation, 輪廻]라고 합니다.
2020년 6월 29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