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받는 사람보다 그 현장을 보고 있는 사람이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보다 더 고통스런 사람은 지옥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행히도 사람은 죽기 전에는 지옥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죽으면, 곧바로 지옥고를 겪습니다.
역도 성립합니다. 행복한 사람보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행복감을 더 느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으신가요? 자기가 먼저 행복해야 됩니다. 행복한 사람을 바라보는 짝꿍이 더 많이 행복해집니다.
힘들 때 그리고 위로가 필요할 때 어떡하십니까? 잠을 잔다구요? 맛있는 걸 먹는다구요? 술을 마신다구요? 행복한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만나서 목적 없이 아무런 얘기를 나누고 함께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최고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뭐가 많아서 행복한 게 아닙니다. 행복한 사람은 세상을 행복하게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같이 산책하다가 작은 발견에 놀라면서 허물없이 즐거워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힘은 자기가 내야 하고, 위로는 자기가 일구어야 합니다. 힘든 사람을 위로한다고 ‘힘내. 잘 될거야’하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위로랍시고 지가 힘들었던 얘기를 꺼내면, 친구만 아니면 진짜 죽이고 싶다는 살의를 느낍니다.
아무 이유 없이 기대도 되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머물러도 되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숨만 쉬고 갈 수 있게 놔두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가만히 손을 잡아 주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가볍게 포옹하여 토닥토닥 해주는 사람.
인간의 감정은 동화가 잘 됩니다. 행복한 사람이 많은 곳에 들어가면 행복을 느끼고, 불행한 사람이 많은 곳에 들어가면 불행을 느낍니다. 인간은 혼자서 힘을 내고 위로 받고 ‘아자 아자’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를 닮아가는 무의식적인 본능과 반응과 행위가 인간에게 있습니다. 오래 산 부부가 서로 닮은 이유는 닮고자 해서 닮은 게 아닙니다. 옷감에 물든 염색처럼 서로 물들고 스며든 겁니다.
행복이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매일 행복하지는 않아도 날마다 행복한 일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오늘도 ‘아자 아자’ 해봅니다.
2020년 9월 29일 사람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