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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창록 Jan 30. 2022

소통과 공감

'소통과 공감'이란 말이 하기는 참 쉽지만,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건지는 사실 모릅니다.

 

소통은 Communication이 아닙니다. 소통은 성글 소와 열릴 통입니다. 가을녘에 벼가 영글었는데 태풍이 와서 벼가 쓰러졌습니다. 쓰러진 벼를 그대로 두면, 습기가 차서 전부 썩어버립니다. 그 벼를 하나씩 일으켜 세워 성글게 묶어서 바람이 통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벼가 썩지 않고 햇볕에 잘 여물어 추수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통하는 것처럼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소통입니다. 숨만 쉴 수 있게 해주면, 치유은 자기 스스로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게 공감이 아닙니다.

 

"공감이란 나를 미루어서 그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공감도 강자가 하는 것이고 연대고 강자가 손내미는 것입니다. 내게 불편한 약자의 처지를 공감하여 연대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일까요?" - 페친 우한기 님 글 -

 

"공감이란 선심쓰듯 톡 내뱉는 수사적 개념이 아닙니다. 삶의 비루함과 처연함을 맛본 사람이 그와 비슷한 흉터를 가진 타자에게서 느끼는 그런 날 것의 시퍼런 실천적 개념입니다." - 조우성 변호사 님 글-

 

그래서 '힘을 내라'는 말을 하기 정말 힘듭니다. 그래도 '힘을 내라'는 말 말고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힘을 내라'고 말할 때, '힘을 내라'는 말이 그 사람에게 들려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남녀의 인연을 감정적으로 잘 표현한 드라마가 '연애시대'라면,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위로하고 위로받고 힘을 내고 응원하는 지를, 감정적으로 잘 표현한 드라마가 '나의 아저씨'입니다.

 

모든 사람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는 구겨진 휴지와 같습니다. 아무리 펴고 다림질해도 나무의 생채기처럼 구겨진 흔적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가진 채로 그 시점부터 다시 살아내는 것입니다.

 

공감이란 상처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받아들인 채로, 서로 함께 살아낼 수 있는 쌍방향 스며듬입니다. 그 스며듬의 힘으로 각자 스스로 독립하여 살아갈 수 있어야 치유가 된 순간입니다.

 

치유는 떠남으로 완성됩니다.

 

2021년 3월 4일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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