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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an 17. 2021

여행기를 듣는 즐거움

요즘 나를 즐겁게하는 것들 - 2. 여행 팟캐스트 듣기

 역마살이 있는 사람으로서 집에 칩거하는 답답함과 괴로움을 풀 길 없어 힘들어하던 찰나에 귀로, 또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방편을 찾게 되었다. 바로 오지은 작가가 진행하는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이나떠)> 팟캐스트를 듣는 것이다. 제목이 꽤 중의적이다. 여행이 어렵고 두려워서 아직은 때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은지, 아니면 세상에 쉽게 갈 수 있는 나라, 가까운 나라며 많지만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은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들은 에피소드로 미루어보건대 둘 다에 해당하는 것 같다.





 <김혜리의 필름클럽>이 내가 영화를 훨씬 깊게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나의 지평을 넓혀주었다면, <이나떠>는 내가 여행을 즐기고 대하는 방식을 바꿔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경험과 의견을 레퍼런스 삼아 내가 혼자서는 이르지 못하는 더 멀고 깊은 곳까지 가닿을 수 있다는 게 팟캐스트의 매력인 것 같다. 책이 그런 역할을 도맡아했으나, 팟캐스트 덕분에 사람의 목소리로 전해듣는 이야기가 갖는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느끼고 있다.




<이나떠>에서 내가 처음 들은 에피소드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 즉 순례길 편이다. 예전에 내 회사선배가 인생에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없냐고 물었었는데, 당시는 회사가 너무 끔찍해서 "퇴사"가 그 답이었지만, 언제나 내 마음 속의 버킷리스트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었다. 늘 내 관절이나 쉽게 지치고마는 성향을 생각하면, 또 여러 루트 중에서도 족히 한 달 이상은 걸릴 루트를 택하고야 말 것인 나는 반드시 퇴사를 먼저 해야 할 게 뻔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가야만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여행 경험이 풍부했던 Cierra를 알게 된 덕분이다. 미국에서 만난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고 10년에 한 번씩은 꼭 그 길을 걸으리라 단단히 결심했다고 한다. 실제로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혹은 기간을 정해놓고 여러 차례 걷는 사람들도 많다고. 그래서 내가 그가 다녀온 시점을 계산해본 후, 그럼 너는 다시 가려면 몇 년이 남은 셈이네, 라고 말했더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 어렵다며 안타까워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재밌었다. 당시 친구 한 명과 그 길을 같이 걸었는데, 순례길을 시작하기 전날에서야 실은 자기는 걷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놀란 그가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널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라고 답했단다. 그런데 그 여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친구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서 다시 처음 시작점까지 가고 싶다고 말했단다. 




 <이나떠>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게스트를 초빙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출퇴근길에 들으며 마음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가 내 기준에서는 꽤 오래전에 다녀온 게 아쉽긴 했으나, 배낭은 자기 몸무게의 10% 이내 정도로 챙겨야 한다던가, 물집이 생겼을 때의 대처법, 진창길을 걸을 때 신발을 보호해 줄 준비물을 챙기면 좋다는 것 등등 좋은 팁들을 마음에 새기며 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길 자체의 난이도가 크게 높지는 않다는 그의 말이었다. 




 이 편이 매우 좋았기에 다음은 사막편을 들었다. 사막? 나는 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여행지였으나, 팟캐스트를 들은 후 단단히 바람이 들었다. 사막에 여러차례 다녀온 게스트는, 다른 여행자로부터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듣고는 놀랐다고 한다. 사막에 처음 갔을 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정확히 같아서. 나는 이 말이 너무 인상깊었다. 나는 늘 생과 사의 경계에서 걸어가는 기분이었는데, 내가 이미 지나온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죽게 되었어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늘 생각했기 때문에.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나도 언젠가 다른 여행지에서 할 수 있게 되었으면. 그 날이 올 것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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