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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Nov 22. 2020

필사하는 즐거움

요즘 나를 즐겁게하는 것들 - 1번. 필사

 요즘 자기 전에 필사하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낮 시간에는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에는 포스트잇을 달아서 표시해두고 그날 밤에는 작은 수첩에 옮겨적는 것이 하나의 의식처럼 자리잡았다. 되도록 그날 읽은 구절은 그날 안에 필사하려고 하는데, 기억에 남는 정도가 다르고, 또 그날 읽었을 때의 느낌과 다음날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졸음을 이기지 못할 때는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마저 옮겨적곤 한다.





  필사를 할 때에는 그저 구절만 옮겨적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짧거나 길게 내가 느꼈던 감상을 적는다. 왜 그 구절이 좋았는지, 내 마음이 왜 그 구절에 유독 반응했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실은 정말 좋아서 포스트잇을 붙여놨는데 밤에 펼쳐보면 막상 다른 구절이 더 좋았던 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독서하면서 메모를 하는가 보다.





 필사하면 무엇이 좋을까? 내가 손을 움직여서 적는 만큼 느려지고, 그 느린 속도로 내 마음에 더 깊이 새길 수 있다는 것. 자기 전에 천천히 적어내려간 그 글은 내 마음 속에 살아서 다음날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도 쉽게 내 의식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덕분에 길을 걷다가도 상기되는 구절에 나는 맞아, 이런 좋은 글을 읽었었지, 이 글이 내 것이 되었지,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어느날은 필사를 하다가 지금 내 모습이 꼭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벌로 깜지를 시켜서 하던 그때와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즘도 선생님들이 깜지를 시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벌과 학습은 한 끗 차이라는 것, 또한 이래서 선생님들이 깜지를 시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은 계속해서 종이와 내 마음에 함께 새긴다면, 깜지를 할 때는 손은 적되 마음은 콩밭에 가있어서 글은 종이 외에는 다른 어디에도 남지 않고 다만 내 팔과 손목에 고통만 될 뿐이었다는 게 다른 점이다.





 내가 필사를 하게 된 계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작고 예쁜 수첩이 하나 생겼고 필사하기에 딱 좋은 규격과 재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 이것도 하나의 넛지인가 싶은데, 가끔은 어떤 확고한 결심에 이은 행동보다는 앞선 행동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필사를 하면서 내가 가진 노트들을 정리해보는데(아직 반도 안 썼는데 벌써 다음 수첩을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생일 적에도 필사를 했었다는 걸 약간의 충격과 함께 깨달았다. 그때는 한참 야망이 많던 어린이라 투지를 불태우는 글을 많이 적었었고, 다만 초등학생 같은 글씨체는 지금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아서 그 시절의 나를 잠시 귀여워해주었다. 다음의 구절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적었는지 똑똑히 기억난다.(적어도 기억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식 있는 평론가들이 보기에 독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우를 그녀는 범했다. ― 책에서 뭔가를 얻고 싶어한다는 것. … 나보코프가 뭔가를 배우려고 소설을 읽는 사람들을 조롱했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터 ―




 그 시절의 나는 문학을 유독 즐겨 읽었고, 내가 문학을 읽는 것이 어떤 효용을 안겨주는지 의문을 던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은 분노해있으면서도 스스로도 어떤 분명한 언어들로 그들을 설득할 수 없어서 더 약이 올랐었다. 아쉬운 것은 그때는 필사하면서 출처를 적어두지 않았다는 점. 




 내가 최근에(정확히는 11월 2일에) 옮겨적었고, 내 마음 건강에도 크게 도움되는 것은 다음의 구절이다. 이 구절 덕분에, 내가 잘못한 상황에서 나를 비난하거나 자책하는 빈도와 강도가 많이 줄어들었고, 날 스스로 혼내다가다도 재빨리 방향을 틀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잘못함으로써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사람이기에 당연히 실수할 수 있으니까, 이 기회를 가진 것에 기뻐해야 된다고.




 그러니 당신이 큰 실수를 저질러 실패를 맛봤다면 기뻐하라 ― 성공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니까. 

  ― <리얼리티 트랜서핑 3>, 바딤 젤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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