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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an 23. 2021

식물과 함께하는 즐거움

요즘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 - 3. 반려식물

 그 긴 시간 동안 바통을 넘겨받은 낱알들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낱알을 생각하면 조용히 달려가고 있는 어떤 생물이 떠올라.
가능하다면 계속 계속, 달려주었으면 좋겠어.




 엄마아빠가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금냥화를 들여왔다. 초록 잎사귀가 무성하게 뻗어있고, 그 밑에는 빨갛고 조그만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서 사랑스러운 식물이다. 거실에 놓으니 자리며 화분의 색깔이 맞춰놓은듯 잘 어울려서 마음이 흡족했다. 안그래도 식물을 사고 싶어서 꽃집을 스쳐지나갈 때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보고 또 보며 고민하던 참이어서 이 귀한 식물이 반가웠다. 





 어느 순간부터 길에서 나무를 만나면 그저 전봇대나 가로등과 다름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물체가 아니라, 여기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명으로 인식이 되었다. 식물을 들였다가 죽이기를 반복하는 나 자신에게 환멸을 느껴서 더이상은 들이지 않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식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잘 키우고 계속해서 키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들은 나와 무엇이 다를지 궁금했다.





 식물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안난초 만화가의 <식물생활 1: 그래서 식물이 좋아>를 읽었다. 식물애호가 10명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로, 부드럽고 따뜻한 그림체가 큰 매력이다. 그들은 어떻게 식물애호가가 되었을까, 또 식물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들은 우연한 계기로, 혹은 대부분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덕에 식물과 함께하는 삶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심고, 기다리고 끊임없이 살피고, 일상의 리듬을 식물과 맞춰나가는 삶. 





 만화를 읽는 내내 마음이 조금씩 편안하고 행복해졌다. 2월이면 꽃시장에서 히아신스 알뿌리를 딱 한 개 사오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이야기와 자취를 시작하던 딸에게 큰 선인장 하나를 선물로 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선인장만 같아라고 말하던 아버지 이야기, 여행을 가면 꽃집에서 꽃을 사와서 꽂아 두고는 비로소 내 집같아 안심하는 이야기 등등. 식물과 얽힌 추억과 일상들이 삶을 잘 가꿔나가는 이들의 삶이란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온갖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 욕심부리지 않고 성격에 맞는 식물, 지금 내가 사는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고르고 키우는 방법을 터득한 이야기였다. 나도 언젠가는, 내 방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들여와 오래오래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단꿈을 꿀 수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식물애호가들이지만 좋아하는 식물 취향도, 식물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모두 달랐다. 저마다의 이유로 서로 다른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초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그들은 분명 그들의 영혼과 퍽 닮아있는 식물들에게 이끌렸을 것이다. 식물과 함께하는 삶은 팍팍할 수 없다는 걸 새롭게 느꼈다. 생존에 필요한 것만을 내 삶에 들이는 삶이란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21년은 식물을 가꾸며 스스로의 영혼도 정비할 줄 아는 그들처럼 지내기. 식물처럼 내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이 또 무엇이 있는지 늘 귀기울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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