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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05. 2021

철학을 내 마음의 갑옷으로 삼기로 했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저


“우리는 정말 바보다. 우리는 ‘그 사람은 평생을 허송세월했어’라거나, ‘난 오늘 한 게 없어’라고 말한다.


아니, 그동안 살아 있지 않았단 말인가?”


― 몽테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모두 읽었다. 이 책의 특별함은 생각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먹고 마시고 움직이고 삶을 온 몸으로 살아내는 철학자들을 선별하여 우리에게 소개시켜준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쇼나곤, 간디같은 철학자들이다. 나는 익히 알던 철학자들, 그것도 일부는 널리 알려진 악명 높은 사생활로 기억하던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모든 탈 것에서 멀미를 하는 나지만, 기차와 비행기만큼은 견딜만 하다. 어쩐지 낭만적이고 <비포 선라이즈>가 떠오르는 이 기차여행을 통해 인생의 시기별로 마주하는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스위스, 파리, 보르도, 보스턴 등을 기차로 이동하며 철학자들이 살고 사랑하고 증오했던 도시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만난다. 소로처럼 걷고,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가지고, 보부아르처럼 늙으며.





이 책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좋아진다. <황혼> 챕터에서 나는 삶을 살아내느라 격양되었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젊은이의 나이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늙어가는 것뿐이 안 남았다고 여겨지는 내 나이 탓도 있지만, 나와 같이 사는 부모님이 이제는 노인이 되어 가며 늙어간다는 의미를 함께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보부아르를 소개하는 장에서 그가 다른 때와 달리 딸과 함께 여행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존재는 우리를 잠에서 깨게 만든다.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내 삶을 바라보게, 외면해왔던 질문을 피해갈 수 없게.





그는 성공적으로 노년을 맞이하기 위하여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나이가 훨씬 이전부터 습득하면 더 좋을 기술들이며, 어떤 측면에서 보면 나이가 들었기에 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 목록의 첫 번째는 바로, 과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나이가 들수록 추억은 어제 일처럼 우리를 습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보부아르의 입을 빌려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체험한다고. 우리는 과거를 재구성할 능력이 있다. 그 외의 목록은 이와 같다. 친구를 사귈 것, 습관의 시인이 될 것,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등.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고 스스로 느끼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지침들이다.






마침내 이 책을 완독한 어제도 속상한 일이 있었다. 업무 중에 내가 미처 신경쓰지 못해서 넣었어야 할 문구를 넣지 않았는데, 수화기 건너편에서 계속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에둘러 지적하기에, "내가 잘못했다"는 걸 시인했더니, 잘못했다고 하면 다야? 로 시작하여 마구 화를 냈다. 마음에 잔뜩 상채기가 났고, 화도 났지만 나는 이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은 사람이다. 친절하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 철학 입문서를. 나는 처음 일어난 이 반응―화, 부끄러움 등―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실수를 함으로써 나는 제대로 배웠고, 같은 잘못을 두 번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므로 이건 기쁜 일이다. 나는 내 잘못을 전적으로 수용한다. 다 카포. 나는 내 운명을 전적으로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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