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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Nov 03. 2021

예민해서 불안한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책

<유별난 게 아니라 예민하고 섬세한 겁니다>, 제나라 네렌버그 저

 그녀는 감정은 늘 감각 위에 덧입혀진다고 설명했다. 감각과 정서는 신경학적으로 '이중 부호화'되기 때문에 감각 경험에는 언제나 정서 경험이 동반된다. "감정과 감각은 반드시 함께 다뤄야 해요. 둘 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매우 실제적인 현상이니까요." (생략) "울음은 신경학적 반응이에요. 울음이 터진 건 감정 때문이 아니었어요. 뇌가 과도하게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죠. 이상하게도 머리로는 괜찮다는 걸 알면서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마음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자극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서 뇌가 더 이상 자극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매일 독서 일기를 써야 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바로 이 책, <유별난 게 아니라 예민하고 섬세한 겁니다>를 완독하고 나서 정리하려고 보니, 주옥같은 구절, 그리고 딱 그 구절을 읽을 때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감탄한 것들이 모두 흘러가버린 것 같아 아쉽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제목 때문에 약간 가볍고 큰 도움 안 되는 종류의 책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학술적이어서 좋았다. 과학적인 근거와 실제 사례들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책 제목에 맞게, "예민하고 섬세한" 이들의 현실이 어떻게, 왜 다른지를 짚어주어서.




 나는 천명관 작가의 <고래>,  영화 <아이 오리진스> 같은 작품을 무척 좋아하는데, 바로 등장인물의"설정값" 때문이다. 이 작품들에는 각각 다른 사람들처럼 언어를 이해하는 게 어려운 여성,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감각하지 못하는 것을 '감각'할 수 밖에 없는 여성이 있다. 책 <유별난 게 아니라 예민하고 섬세한 겁니다>는 신경전형인과 대조적으로 신경다양인을 언급한다. 이들은 전세계 인구의 30%에 해당하는데, 감각계가 남다른 사람들에 해당한다. '감각은 영혼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감각 처리가 남다른 신경다양인이 신경전형인과 달리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그들 역시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해야 함을 역설한다.





 또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지점이 있다. 어떤 피해의식의 발로에서가 아니라,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편리하게, 그리고 경제적 이점에 맞게 여성을 배제해왔으며, 여성들의 몸과 마음, 그들의 영혼과 현실을 지속적으로 무시해왔는지 되짚어주며,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상기시켜준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이에 대해서 인지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자신들이 겪은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자신의 언어를 새롭게 찾아야 하는데, 그 필요성 자체를 알아차리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주위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는 용기,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등이 적지 않게 필요하므로, 모두가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으로부터 실제적인 도움을 받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이겠으나, 일상에 적용 가능한 다양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법들을 찾아냈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지속적으로 책에 등장하는 작업치료나 심리치료를 받을 생각도 없고, 나름대로 내 예민한 감각기관과 동반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누구도 내게 그런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았고, 그저 내가 살면서 스스로 터득한 것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유별나게 예민한 것은 내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그와 동시에 역시 예민해서 저렇게 어려운 이야기하는 책을 읽고는 유별난 소리를 하는구나, 생각하고 넘기거나 아니야, 너 그렇게 예민하지(유별나지) 않아, 너 자신을 더욱 이상한 사람으로 결론짓지 마, 식의 이야기를 하고 화제를 전환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현실이 그들이 감각하는―물론 그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그들 역시 서로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있을 테다― 현실과 어떻게 다를 수밖에 없는지, 왜 나는 쉽게 지치고 피로한지,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매일의 도전인지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게 매우 다행스럽게도, 또 주위의 다른 여성들에게 더욱 권하고 싶게, 책에는 많은 신경다양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직업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이루어냈으나, 어쩐지 끊임없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자폐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어 의심은 못했으나, 신경다양인으로서 진단받고 얼마나 놀라고, 위안받고,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토로하는 여성들이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과 동일한 증상을 보이는 아이가 바로 그 증상 때문에 ADHD 또는 자폐증이라고 진단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생각만 해도 기묘하지 않은가? 자폐증, ADHD 등이라고 진단받고는 안심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것이. 그제야 그들은 지난 인생에 빠져있던 퍼즐 한 조각을 찾아낸 것이다.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과 올바른 치료 방법을 알게 된다. 이름―이 경우에는 주로 진단명―을 아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로서 나는 이런 책들을 읽으며 다른 어떤 가까운 사람들에게서보다 더 큰 위로를 받는다. 단순히 민감성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식의 듣기 좋은 이야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다만, 왜 나는 카페인을 마시면 새벽 세네시까지 잠을 이룰 수 없는지, 왜 나는 내가 운전하면서도 멀미를 하고, 그것도 며칠씩이나 고생을 해야 하는지, 왜 소리에 이토록 예민해서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큰 소리에 누군가가 나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는지, 왜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일이 잦은지 등등의 수많은 의문점들―주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어려운 이유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남들과 이토록 다를까(이상할까), 왜 나는 사는 게 이렇게 벅찰까에 대하여 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태어났을 때부터 필시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고 더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며, 나같은 사람을 주위에 쉽게 찾을 수 없고, 찾더라고 의식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알 수 없던 수많은 신경다양인들의 속내, 고백, 그들의 어려움을 읽고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 이 세상에 온전히 나 홀로 남겨진 게 아니라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신경다양인을 포함하여 그들의 부모, 가족,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 마음이 다름 아닌 사랑이며, 그런 사랑을 통해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함께일 수 있으므로.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실감한 것은, 다른 어떤 사람들의 의견, 주류에도 편승할 필요가 없으며, 내가 느끼고 감각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 내게 긍정해야 한다는 것. 나 자신을 더욱 깊게 믿고 내게 맞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가 감각하는 현실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매우 근거 있는 방식으로 알게 되어서 좋았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경다양인들이 살만한 세상은 신경전형인들 역시 더욱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데 공감한다. 마치 소화기관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이 선별해서 먹는 건강한 음식이 소화기관 튼튼한 사람들에게도 역시 권할 만한 음식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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