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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Nov 05. 2021

영혼에 바다를 품은 사람이란

<슬픈 세상의 기쁜 말들>, 정혜윤 저

반면 타인을 볼 때 그 사람이 지고 있는 무게를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신의 고통으로 타인이 지고 있는 무게를 가늠해보는 사람 또한 드물다. 하지만 아주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말은 다르다. 그는 영혼에 바다를 품고 있는 것이다 다름없다.

  ― <슬픈 세상의 기쁜 말들>, 정혜윤 저





 이 문장은 글쓰기 모임에서 건져올렸던 문장, '우리는 각자의 벼랑 끝에 서있다'의 또 다른 버젼으로 내 마음에 날아와 꽂혔다. 사람이 영혼에 바다를 품다니. 이 얼마나 믿을 수 없도록 멋진 일인지.





 동해에서 태어나 바다를 늘 바라보며 살아온 나는, 바다를 떠나온 지금에도 늘 바다를 그리는 사람으로 남았지만, 어떻게 '영혼에 바다를 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바다를 닮은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마주한다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지, 그저 마음이 깊고 넓다란 사람이라면 바다를 닮은 사람인지 나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는데, 이 문장이 내게 답을 알려준 것만 같았다. 그리워하는 바다를 품에 한아름 안을 수 있는 방법은, 너의 것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요즘 연말이라 직장 일이 바빠서일까, 가지에 잎 하나 남지 않은 겨울이 내 마음에는 일찍 찾아와 유난히 스산해서일까, 바다가 보고싶다. 그러나 바다를 이토록 그리워하는 중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다.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은 새털처럼 가볍게 살고 있다는 듯이. 그가 지고 있는 무게 따위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마치 오직 나만이 이 세상의 고통받는 영혼이라는 듯이 말이다.





 누군가에게 가있던 마음이 밀물처럼 다시 내게로 몰려오고 있다. 이런 걸 바랐던 것은 아닌데. 내게로 돌아오는 마음이 나를 왜 이렇게 쓸쓸하게 만드는지. 





 최근에 내 고향, 그러니까 바다에 인접한 작은 동네에 내 직장동료가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살던 때보다 볼 거리도 많이 생기고 꽤 여행할 만한 곳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여행 후기로 다시 본 고향은 낯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이 가고, 사랑스럽고, 다시 찾고 싶은 곳. 그래서 사람은 자꾸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가 보다. 그곳에 내 온 마음이, 내 정체성이 있으므로. 내게 고향과 바다는 동의어이듯, 나도 언젠가 바다로 돌아갈 것처럼, 나도 바다를 닮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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