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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Dec 21. 2021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눈 오는 겨울날 집에서 보기 좋은 영화

   오랫동안 보고싶어서 마음에 부채처럼 쌓여있던 영화 <러브레터>를 봤다. 창밖에 하얀 눈이 쌓인 주말, 끊임없이 내리는 눈이 배경인 이 영화를 볼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쩜 이렇게 영화음악이며, 배경, 배우들의 모습과 연기, 추억할 수 있는 사진, 타자기로 치는 편지, 쉬이 떨어지지 않는 감기―그 모든 것이 겨울의 감성을 건드렸다. 




 실은 예전 회사에서 선배님이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냐고 내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쩌다가 흐르고 흘러서 이 영화 이야기까지 나왔는지는 도통 기억이 안 난다. 오갱끼데스까― 하고 외치는 장면이 있는데, 제목은 그게 아니고…. 참 말이 많다고 생각했고, 왜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어서 하여간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더 궁금해졌다. 어쩌다 <러브레터> 얘기가 나왔었는지, 선배는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렇게  <러브레터>를 생각하면 피할 수 없이 떠오르는 사람이 생겼다.





 큰 사건은 없는 영화인데 슬픈 장면도 아닌 데서 눈물이 났다. 영화 <작은 아씨들>을 볼 때도 꼭 그랬었는데, 그때와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그렸었다면, <러브레터> 그때의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울었다.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보다 더 귀한 것도 아닌데―나는 그 모든 일을 겪은 뒤에 만난 사랑, 사람이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제대로 닿지 못했던 사랑을 계속 추억하게 되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중학교 때 좋아했던 후지이 이츠키를 닮았기 때문에 와타나베 히로코를 만난 거라고, 그래서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못됐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했던 사람을 꼭 닮은 사람을 성인이 되어서 만났을 때, 좋아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좋아하게 된 사람을 오로지 추억 속 사랑을 닮았다는 게 그 사람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결혼을 결심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아닐 테니까. 아주 많이 좋아했던 사람과 꼭 닮았다는 건 지금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러브레터>가 편지를 통해 추억하는 사랑이라는 단순한 주제를 담고 있다. 다만, 와타나베 히로코는 편지를 통해 점차 그를 떠나보낸다면, 후지이 이츠키는 점차 그를 떠올리게 되고, 그 자신도 몰랐지만 좋아했던 그를 추억하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와타나베 히로코는 죽은 연인에게 안부를 전하며 '꼭 필요했던 과정', 그에게 작별을 고하는 반면, 후지이 이츠키는 자신을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 눈물을 훔친다. 그들은 소중히 추억할 수 있는 사랑을 각자 간직한 채로 씩씩하게, 잘 지낼 것이다. 그들 스스로 그렇게 선언한 만큼. 오히려 그 추억이 있음으로 인해서.




 나는 와타나베 히로코가 꼭 그의 연인마냥 감정 표현에 미숙해도, 분명 지속적으로 등장해서 극을 끌고 나가는 선배라는 사람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이 있다고 보았다. 내가 그와 얼마간 닮아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렇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찾아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입맞춤을 거절하지도 못할 정도로 어리숙한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잘 지낼 수 있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그 선배가 곁에 있기 때문일 것이고, 이제 그가 죽은 후지이 이츠키에 대해 간직하고 있는 사랑은, 그것도 사랑이지만 추억 속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 역시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 이 영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같은 위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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