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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Dec 09. 2021

드라마 <오월의 청춘> 추천

주님 예기치 못하여 우리가 서로의 손을 놓치게 되더라도
그 슬픔에 남은 이의 삶이 잠기지 않게 하소서

혼자되어 흘린 눈물이 목 밑까지 차올라도
그것에 가라앉지 않고 계속해서
 삶을 헤엄쳐 나갈 힘과 용기를 주소서

― 드라마 <오월의 청춘> 속 명희의 기도문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참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았을텐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머리로 알고 있었고 광주 출신 친구들은 모두 같은 고통과 울분을 공유하고 있던 것도 봐서 알았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1980년 5월의 광주가 내게 도달했을 때는 울림이 전혀 달랐다. 이렇게 귀한 드라마가 만들어지게 되어 다행이다. 이제 더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알게 되고, 또 개인적인 아픔으로까지 받아들이게 되었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오월의 청춘>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광주의 한 응급실에 근무하는 간호사 명희와 광주 출신으로 서울대 의대생 희태가 서로 사랑에 빠져 잠깐의 봄날을 함께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함께 있어서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은 너무나 짧고, 함께 또 멀리 떨어져서 각자 홀로 눈물 지을 수밖에 없던 나날들은 너무나 긴데, 피할 수 없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는 그 청춘에 대한 이야기.






 드라마는 2021년 광주에서 백골 상태의 유해 한 구가 꽤 귀해보이는 시계와 함께 발견되며 시작한다. 이를 뉴스로 들은 한 남자는 심하게 동요하는데, 분명 이 유해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받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행색은 마치 그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인생을 내버리듯 살아온 것만 같다.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중간중간 1980년으로부터 2021년으로 건너뛸 때마다 등장하는 이 남자가 누구일지 너무 궁금했다. 분명 야무지고 잇속을 잘 챙기는 희태나 수찬이는 아닐텐데 누구일까…. 그는 광주의 '불순분자'를 진압하러 왔던 희태의 친구, 경수였다. 그는 너무 큰 고통을 떠안은 채로 그 긴 세월을 홀로 견뎌왔던 것이다.






  가해자의 위치에 선 사람이건 피해자의 유가족이건 이 거대한 흐름 속에 휘말렸던 모든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흔을 남긴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희태는 당시 보안부대 소속으로 고문 앞잡이 역할을 했던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무도 당신을 가족으로 택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고아는 당신이라고. 내내 너무 뚜렷한 빌런 역할을 희태의 아버지만 도맡느라 바빠 마음이 답답하던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조금 안심했다. 결국 그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던 희생자에 불과함을, 그리고 사다리의 어느 위치에 있건, 밟는 쪽이든 밟히는 쪽이든 모두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체제 속 부속품이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날의 광주에 얼마나 많은 명희가 있었을까? 더 안전하게 자기 자신을 숨길 수 있었음에도 의료진으로서, 광주 시민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죽음의 위험을 불사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 수찬이와 수련이가 있었을까? 바꿀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고 믿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꼭 자기 자신만큼 귀한 사람이고 누군가의 가족임을 알았기에 거리로 뛰쳐나간 사람들이.

그리고 지금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희태가 살아있을까….






 희태와 명희는 서로에게 말했었다. 당신을 잃는다면 모든 걸 잃는 거라고. 그렇게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이, 자꾸 밀물에 쓸려서 그 5월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그들의 시간이 얼마나 오래 멈춰있었는지…. 이미 끝난 드라마를 뒤늦게 몰아본 터라 결말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잘못 알았기를, 그래서 명희가 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명희만 죽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를 가슴에 묻고 다들 잘 살아갈텐데 그건 못 견디게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명희는 그걸 바랐을테지만, 심보가 고약한 내가 억울할 것만 같았는데, 하나도 다행스럽지 않게 그들은 조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희태가 모든 것을 잊고 잘 살아갔더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차라리 희태의 마음이 충분히 단단해서 명희는 금세 잊고 그의 성정처럼 씩씩하게 살아갔더라면, 수련이가 본인의 안위를 더 걱정할 만큼, 당장 건강이 편찮으신 아빠를 더 생각할 만큼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가족을 아낄 줄 아는 인물이었더라면, 그들은 그보다 덜 앓았을 것이다.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고 몇 십년간 덜 아파도 됐을 텐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매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했다. 더 힘들고 위험하고 누구에게도 칭찬받지 못할 길,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 피치 못하게 상처줄 길을 갈 것을, 그것도 당장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5월 죄없이 죽어간 많은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래서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꼭 내 가족만큼 소중하고 아주 귀한 삶들이 속절없이 밟히고 져버렸음을 함께 오래도록 슬퍼해야 한다. 그 희생이 곧 우리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안온한 현재를 누릴 수 있는 것이 그들 덕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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