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섬에 있는 서점>과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마야." 그가 말했다. "중요한 말은 하나밖에 없어."
"마야,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바로 우리야.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우리다."
"우리는 우리가 수집하고, 습득하고, 읽은 것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 있는 한, 그저 사랑이야.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진정 계속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해."
― <섬에 있는 서점>, 게브리얼 제빈 저
요즘 책이 나오는 책에 푹 빠졌다. 작가들은 책을 사랑하고, 사람은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마련이므로 책이나 작가이 나오는 책은 많지만, 아예 책이 전면부에 등장하여 책에 대한 사랑을 함께 논하며 흠뻑 젖게 되는 그런 책을 특별히 찾고 있다. 예전에도 한동안 그랬었는데, <서재 결혼시키기> 같은 책을 줄줄이 읽으며 희열을 느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은 소설이라는 것.
시작은 <섬에 있는 서점>이었다. 말 그대로 앨리스섬에 딱 하나 있는 서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책이다. 서점 주인은 아내를 잃고 고통에 빠져 어떠한 열의도 없이 살고만 있었는데, 그때 한 출판사에서 전임자의 죽음으로 새로운 여성이 이 서점에 방문한다. 그들의 첫 만남은 최악이었으나, 그가 추천하며 남기고 간 한 권의 책을 뒤늦게 읽은 주인은 그에게 연락을 하고, 그들은 천천히 가까워진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기가 서점에 홀로 남겨진 것이 발견되는데…. 로맨스, 범죄, 추리 등이 모두 들어가 있으며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는 이 소설은 묘한 매력이 있는데, 바로 챕터 시작마다 주인공인 서점 주인이 빼어난 단편에 대해 한두 문단씩의 편지 형식의 독서에세이를 남겨둔 것이 특징적이다. 그 독서에세이를 읽고, 소개된 단편들에 대해 궁금증이 일기도, 내가 읽어본 감상과 비교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즐겁고도 가볍게, 그러면서 책과 독서에 대한 사랑으로 푹 젖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연초를 맞이해 독서를 다시 시작하려는 독자들에게 알맞는 책이다.
그 다음으로 고른 것은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릴리 제임스 주연의 영화로도 나와있어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한데, 나는 도무지 이 영화의 매력을 모르겠어서 중도에 멈추고―이렇게 멈춘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던 이 책마저 내 취향이 아닐 거라고 간주해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렇게 따뜻하고 쉽게 읽히면서도 사랑스러운 이야기인 줄 몰랐다. 영화보다 백만배쯤 더 재미있는 책이었다. <섬에 있는 서점>에도 북클럽이 나오지만 서점이 주였다면,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제목 그대로 북클럽이 소재이자 주제이다. 북클럽에 속한 다양한 매력과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전쟁 중에, 또 삶 속의 다양한 어려움 속을 헤쳐가는데 책을 어떻게 꼭 붙들었는지, 책이 어떻게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북클럽이라고 해서 꼭 어렸을 때부터 책벌레였던 인물들만 있지는 않은 것이 흥미로운 포인트이다. 전쟁 전에는 책을 전혀 읽지도 않았던 인물들이 다수인데, 개중에는 주구장창 세네카만 읽는 인물, 레시피만 읽는 인물,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는 인물 등이 나온다. 무슨 책이 되었든 전쟁을 비롯한 삶의 고통을 온 몸으로 겪어나가는 동안 그들의 삶의 빛이자 희망, 지침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같다. '독서에서 기쁨을 찾고, 그 기쁨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랑스러운 이들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책과 친구 들에 매달렸습니다. 책과 친구는 다른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으니까요. 엘리자베스가 자주 읊던 시가 있습니다. 그 시를 전부 기억하지는 못합니다만 시작은 이렇습니다. '지금껏 해온 것들이 그토록 사소한 일이란 말인가. 태양을 즐기고 봄의 빛을 느기고 사랑을 하고 생각을 하고 일을 하고 진정한 우정을 쌓은 것이?' (19세기 영국 작가 매슈 아놀드의 두 번째 시집 <에트나 신의 엠페도클레스>에 수록된 시의 일부)
―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앤섀퍼, 애니배로스 저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하시는 이진숙 작가님의 <롤리타는 없다>는 책으로, 부제는 바로 그림과 문학으로 깨우는 공감의 인문학. 그렇다, 이번에는 문학만이 아니라 그림도 있다! 전시회를 가는 것도 조금 무서워진 요즘, 그림에 대한 책도 읽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리 안 아프게 앉아서,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래 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설명과 감상도 함께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는 문장들이 참 많은데, 이 책에 대해서만도 하나의 글을 남기고 싶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이다. 저렇게 예술을, 본인이 하는 작업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고, 내 삶에는 과연 그러한 열정의 자리가 있는가 돌아보았다.
매일 나는 기쁨에 차서 스튜디오에 가곤 했다. 저녁이면 어두워져서 그림을 멈추어야만 했는데, 그다음 날 아침이 올 때까지 나는 거의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 고귀한 회화 작업에 나를 투신할 수 없었다면 나는 참으로 비참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 프로니아 뷔스만의 <부그로 평전>에서
이진숙 작가님은 이 책 외에도 미술에 다가가기 쉽게 집필한 책이 많은데, 그걸 하나하나 도장깨기 하고 싶은 마음. 참, 이 <롤리타는 없다>는 1,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지금 읽고 있는 것은 1권이다. 1권의 주제는 사랑과 죽음, 그리고 예술이다. 그런데 어떻게 안 읽을 수가 있단 말인가! 요즘 한참 '사랑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사랑에 발 담구기가 두려운 내게 여기저기 펼쳐본 이 책이 해준 다음의 문장에 꽂혀서 읽기 시작했다.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생략) '사랑은 나에게 무엇일까'라고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사랑을 하지만 모두 다른 사랑을 하니 그 의미도 향기도 모두 다를 것이다.'
또 다음과 같은 문장도 있다. 어떤 사랑은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시작부터 끝을 생각하고 계획까지 하고 있는 내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사랑하기 전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해낼 수 없기에 사랑은 주어진 세상을 완전히 특별하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랑을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동물이든 공부든 취미든, 그 대상이 무엇이든 사랑을 하고 열정을 바치는 것은 무조건 좋은 일이다. 더 많은 사랑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한다.'
책이 삶을 구원하기도 한다는 강렬한 메세지를 주어서 애독자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안아주는 앞의 두 권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영미권의 독자가 아니므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아무래도 적었다는 것. 한국 문학 중에 꼭 이런 책들이 없을까 싶었고. 결국 삶이란, 그리고 문학이란 읽다보면 꼭 내 이야기 같고 내 주위의 이야기같은 것이긴 하지만, 때로는 알파벳으로 된 이름의, 내 지금의 삶과는 너무도 유리된 생활권 바탕의 문학을 읽는 것이 피로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에는 한국 소설이 그렇게 좋다. 좀 더 내밀한, 그리고 더 말맛을 느낄 수 있는, 내 일상과 더 맞닿아있는 그런 문학들.
긴 연휴에는 책과 영화만한 것이 없다. 읽을 책과 볼 영화들을 잔뜩 쌓아놨는데, 요즘 집중력이 자꾸만 흩어져서, 또 무의미한 줄을 익히 알면서도 휴대폰만 들여다보게 되어서 걱정이다. 내 삶을 되찾아오고 싶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일상이란 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