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저
노라는 죽고 싶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엉망진창에 고군분투일지라도 그녀의 것이었다. 그조차 아름다웠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저
내게도 많고 많은 후회들이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주 시작부터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늘 내 안에 있었다. 만약 그때 내가 삶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대신 그 모두를 끌어안기로 선택했더라면, 내게 등 돌린 사람들의 뒷모습이 아닌 나를 따뜻한 눈으로 보고있던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둘 수 있었더라면, 어느 순간에도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은 선택을 했더라면, 좀더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했더라면 등등.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런 선택을 하려면 내가 아니었어야 한다고 반은 체념한 채로 받아들였음에도 나 자신을 탓하는 내 안의 작은 목소리가 있다. 그때 넌 그렇게 하면 안 됐어,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지금 이렇게 됐는지 몰라, 지치지 않고 속삭이는.
여기에 그런 책이 있다. 가능한 모든 삶을 다 살아보는 소설책. 노라 시드는 끊임없는 후회의 굴레에 빠져있었다. 그때 아빠가 시키는대로 수영을 계속 했더라면, 오빠와 밴드를 계속했더라면, 남자친구의 청혼을 수락했더라면, 친구 이지와 함께 호주로 갔더라면 등등. 직장에 잘리고 키우던 고양이마저 죽고, 오빠는 자기를 멀리하는 것 같자 낙담한 노라는 삶을 끝내기로 결심을 하는데, 도착한 곳은 학창시절의 도서관이었다. 초록색 책으로 가득찬 도서관에서는 살 수 있는 모든 삶을 살아볼 수 있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인기있는 락스타, 와이너리 농장의 주인, 빙하학자, 화복한 가정을 이룬 평범한 사람 등등. 그는 그토록 곱씹었던 후회의 삶들을 하나하나 몸으로 살아보며 이런 삶을 원한 것 아니었다고 뒤늦게 깨달으며 후회를 하나씩 지워간다.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간절하게 살고 싶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본래의, 자신이 생각했던 최악의 삶으로 돌아온다. 사소한 일상이 아득하게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 하나하나가 가능성으로 반짝이는,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이었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무서워서 다 끝내고 싶을 때. 내 주위는 온통 먹구름인데 이 상태가 꼭 영원할 것 같아서, 한 줄기의 빛도 바랄 수 없어서 낙담한 상태가 지속되었을 때, 그래서 제발 이 삶에 끝을 달라고 하염없이 기도하게 되었던 때. 그러나 끝을 바라던 그 순간에도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는 삶의 다른 가능성을 꿈꾸고 있었다. 그게 내 본심이었다. '다르게' 살고 싶었던 것. 그러니까 당시의 내가 머릿속에서 재생하던 시나리오는 이런 거였다. 나의 시도는 불발하고, 그제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삶에서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일지 깨달은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나 역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삶을 상상하게 되는…. 유치하고 허술하지만 그때는 그것만이 내게 주어진 유일하게 숨통 트이는 선택지같았다.
후회는 반드시 삶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후회는 아주 쉽다. 모든 걸 망쳐버렸던 것 같은 노라의 삶은 실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오빠도, 절친한 친구 이지도 건강하게 살아있으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노라는 알지 못했지만 그가 주변에 베푼 친절로 인하여 건강하게 자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라가 삶을 외면하고 싶었던 바로 그 순간에도 그의 삶은 충분히 의미있었고, 아름다웠다. 정확히 우리의 삶이 늘 그렇듯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 것 같아도, 삶에 바닥을 친 것 같아도, 날 사랑하기 어려울 때도, 아직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아직 살아있으므로.
이 책은 다시 살고 싶은 욕망을 마음에 심어주는 책이다. 굳이 다른 삶을 일일이 살아보지 않아도, 끊임없이 후회로 나 자신을 좀먹지 않아도 된다. 내 삶의 모든 것은 실은 하찮은 게 아니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아주 귀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책. 그래서 자기 자신도, 과거의 수많은 내가 내렸던 그 많은 선택들도, 그 결과로 내 앞에 놓인 삶도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는 당신이 살기로 선택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럴테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계속 살자고, 삶을 사랑하자고.
살아보지 않고서는 불가능을 논할 수 없으리라.
삶에서 고통과 절망과 슬픔과 마음의 상처와 고난과 외로움과 우울함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날까? 아니다.
그래도 난 살고 싶을까?
그렇다. 그렇다.
천 번이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