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저
지구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처럼 우리 역시 지구라는 최고로 멋진 우주선에 올라탄 여행자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의 생이 그토록 찬란한 것일까. 여행길에서 만나면 무엇이든 다 아름다워 보이니까. 손에 무엇 하나 쥔 게 없어도 콧노래가 흘러나오니까.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저
<코스모스>를 사두고 안 읽은 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아무리 읽을 게 없어도 나는 이 책을 펼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집에 박제가 된 채로, 벽지 내지는 벽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코스모스>를 안 읽은 건 나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막 알게 됐다. 나 혼자서 친밀감을 꽤 쌓은 한 천문학자도 <코스모스>를 안 읽었다고 한다. 그 천문학자는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쓴 심채경 박사님이다.
<코스모스>를 들고 다녀서 어떻게 그렇게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냐며 날 기함하게 만들었던 내 동기가 말한 바 있다. 스트레스 받을 때 우주에 관한 이런 책을 읽으면 좋다고. 그렇다. 사방이 벽인 듯 갑갑할 때는 내 시야를 넓게 확장하게 만들어주거나 아예 시선을 돌려버려야 한다. 내 마음의 풍경을 전환시켜줄 수 있도록 산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풍경은 눈에 안 들어오고 내내 똑같은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있으니, 아예 몰입시킬 만한 스토리를 뇌에 줘버리는 것이다.
나는 뼛속까지 문과였고, 과학에 대한 필요―적당한 성적을 받을 수 있는 딱 그 정도― 이상의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야 <랩걸>과 같은 양질의 책을 읽으며 어려서부터 과학에 매혹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상상해볼 수 있었다. 지금과는 분명 지평이 다른 삶이었겠지만, 그 삶을 엿볼 수 없는 나는 의식적으로 다른 분야의 책을 찾아 읽으며 교양을 쌓으려고 한다. 그럴 때면 꼭 지하실에 내려가서 불을 켜는 기분이다. 있는 줄도 몰랐던 구석까지 시야가 닿게 되는 기분.
내가 어렸을 때는 막연히 학문을 계속 하거나 공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둘 모두 아닌 지금, 내가 공부를 계속했으면, 그래서 교정을 벗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그것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도 학문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떤 삶일지 이 책을 통해서 어렴풋이 그려보게 되었다. 학교에 다닐 때 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을 가르치는, 존경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엄두도 못 내겠는 박사님들의 삶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기록은 소중하다. 특히 참고할 만한 표본이 부족한 여성 후배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 책이 또 소중한 것은, 박사님과는 다른 학교를 나왔지만 우리 학교에도, 그리고 아마 다른 학교들에도 있을 <우주의 이해> 수업을 수강하지 않고도 적당히 얕은 천문학 지식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믐달이나 초승달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지구 반대편에는 어떤 별자리가 뜨는지도 몰랐던 나로서는 술술 읽히는 이 책이 고마웠다. 게다가 책 곳곳에 유머감각이 스며들어 있는데, 내게는 없는 이과적 성향 또는 지식과 함께 결부된 것이었으므로 내게는 더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어린 왕자>에서 의자를 조금씩 뒤로 밀면서 계속해서 노을을 바라보곤 했다는 장면에 대한 지적이 있는데, 책에 나온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일몰을 한 번 더 보려면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해를 향해 다가가야 한다. 해가 지평선 위로 조금 올라올 때까지.
의자를 앞으로 당기는 게 이렇게 낭만적이지 않을 일이었나? 나는 역시 이과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탄식했다. 다행스럽게도 박사님은 여기서 끝맺지 않고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어린 왕자라면 의자에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소행성이 자전하는 속도에 발을 맞추어, 지평선 위에 살짝 거려 있는 해를 향해 하염없이 걸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노을 속으로. 더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
순식간에 완독해버려서 아쉽기까지 하기에, 나는 이렇게 내가 몰랐던 분야에 몸담은 여성 직업인들의 책을 하나씩 읽어볼 예정이다. 이를테면 음악, 미술, 그리고 천문학과는 다른 과학 분야 등등. 몰랐던 세계, 나와는 너무도 다른 삶의 방식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게 계속 넓어지고 싶다. 닿을 수는 없겠지만,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하루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