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쓸모 없는 하소연>, 김민준 지음
사랑은 뿌리채 뽑히더라도 의심해서는 안되는 것.
― <쓸모 없는 하소연>, 김민준 지음
얼마전 서점에서 읽고 싶을 만한 책을 물색하다가 짙은 녹색 표지의 얇은 소설을 발견했다. 제목은 <쓸모 없는 하소연>. 정말이지 구미가 당겼던 이 책은, 하소연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어린 아글라오네마 식물을 집에 들여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그 식물의 눈으로 보고 들은 하소연의 삶을 그리는 내용이다. 하소연은 매번 자신이 쓸모 없다는 식의 하소연―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런 내용―을 늘어놓는다. 말 못하는 식물인 아글라오네마는 나름의 방식으로 그를 위로하기 위해 꽃을 피우려고 애쓴다.
책을 다 읽은지 오래되지 않았건만, 나는 이 책을 몇 번이고 다시 펼쳐보고 있다. 그리고 또 다시. 또 얼마간 후에 또 다시. 식물이 물을 필요로 하듯, 나 역시 계속 살아가는 데 위로가 필요하기에. 예를 들면, 내가 지금과는 다른 내 모습을 바라느라 날 미워하고 있다면, "네가 되고 싶은 것은 그럴듯한 가짜로 살아가는 일이었니?"라는 아글라오네마의 말을, 또 내가 충분히 예쁘지 않은 것 같아서 괴로울 때는, "예뻐지고 싶어? 그럼 너를 예쁘게 보이게끔 하는 일이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 그러면 머지 않아, 너도 알게 될 거야. 그 속에서 즐겁게 웃고 있는 네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라는 말을 듣고 싶으니까.
또, 힘든 하루를 보낸 뒤 난 아무래도 쓸모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져내릴 때면, "쓸모 있는 사람과 가치 있는 사람은 조금 다른 맥락이겠지. 네가 무언가의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적어도 내게 넌, 그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또 읽고 싶을 테다. 내가 프로들 사이에 홀로 있는,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아마추어같이 느껴질 때는, "누구도 완벽하게 준비된 채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어. 생각해봐. 살아오는 동안 그런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거야. 사실 삶이란 미완성에 대한 고찰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닐까. 그 추이들을 연결해 나가다 보면 머지않아 알게 될 거야.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행복이라고."라는 말을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아글라오네마의 말을 빌어 '불온한 심장'을 가진 인간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이 책은, 녹색의 표지처럼 식물을 닮았다.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호흡하는 듯 하고, 충분히 습기를 머금어서 건조해진 내 마음마저 축축하게 만들어준다. 또 이 책은, 스스로에게 물을 줄 틈도 없이, 꽃 피우는 시기가 다른 종들을 부러워하며 괴로워하는 인간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다. 그래서 더 귀하다. 예컨대, 사랑의 본질이란 행하는 때에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하는 것이라던가, 꽃잎이 피고 지는 이유는 떨어지는 스스로를 보며 아주 잠깐, 걸음을 멈춰 주기를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그 찰나가 아쉬워서 우리는 순간이 곧 영원이라는 말을 믿어버리는지도 모른다.
<쓸모 없는 하소연> 덕분에 2022년에는 반려식물을 들이고 싶어졌다. 매번 죽어나가는 식물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이제는 아무것도 들이지 말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이번에는 생존력이 탁월한 식물을 선정해야지. 그렇게 같이 살게 된 식물의 말이 내게 곧바로 전해지지 않더라도, 어쩌면 달빛이, 초여름날 선선한 공기가, 겨울에 눈이 되어 내리는 물이, 둘러둘러 내게 전해줄지도 모른다. 식물이 온 몸을 앓으면서 꽃 피우고 싶을 만큼 내게 전해주고 싶었던 애정과 위로가.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같은 방 안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으며, 그것이 어쩌면 사랑의 방식이니까. 이 책이 힌트를 주었듯이.
미완성에 대한 고찰
"간절한 만큼 아름답고, 절실한 만큼 애달픈 말, 언젠가는, 언젠가는……. 삶은 깨어 있으면서 꾸는 꿈, 허나 꿈이란 것은 오직, 미완성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영롱한 것은 아닐까. 텅 빈 가슴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고독의 향수를 머금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길 뿐이다.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 속에 기쁨과 슬픔, 용서와 배려, 그 모든 삶의 구원이 담겨 있을 터. 그러니 그대, 스스로를 사랑하라. 우수에 젖은 눈빛 속에 세상의 모든 빛이 깃들어 있으니, 부디 두려워 말고 스스로를 사랑하라."
― <쓸모 없는 하소연>, 김민준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