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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Dec 08. 2021

어른을 위한 그림책, <새의 심장>을 읽고

시와 비밀에 대한 책

 한 편의 시같은 그림책을 만났다.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은 마음만 먹으면 선 채로 후루룩 읽을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이었는데, 집에서 찬찬히 곱씹으면서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비치 희망 신청을 했다. 그리고 기다려서 받은 책은 아니나 다를까, 내 마음에 쏙 들었고, 한 번 가볍게 읽고 치울 수 있는 책이 절대 아니어서, 처음 읽어보고는 연달아 두 번을 다시 읽었다. 내 마음에 새겨놓고 싶었고, 내 영혼이 곧바로 다시 찾았기 때문에.





 <새의 심장>은 수채화 느낌의, 손을 대면 바스라질 것 같이 얇고 섬세한 그림 속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녀는 바닷가에서 태어나 조약돌이 노래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랐다. 소녀는 시를 포착하는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부스러진 낙엽과 파도가 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녀는 이웃집 제빵사의 아들인 마르탱에게 시를 알려주었고, 마르탱은 오로지 빵을 통해서 시를 구웠다. 


 소녀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호두 안에는 얼만큼의 사랑이 들어있을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시인의 모습이었다. 시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소녀는 시인을 포착하기 위해서 떠나고, 소년은 소녀가 금방 돌아올 수 있도록 날개를 돋게 해줄 새 모양의 빵을 구워준다.


 소녀가 시를 쫓아가서 발견한 것은 실오라기가 풀어져나오는 실뭉치, 그리고 시인들의 모습이었다. 한편 시가 사라진 도시는 어두컴컴하고, 도시와 바다에도 없다면 숲에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찾아간 숲에서 씨앗을 얻고, 그 씨앗은 도시에서 뿌리를 내려 도시에 다시 시가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도시는 숲이 된다. 바다를 떠난 적 없는 소년에게 숲을 보여주고 싶었던 소녀는 소년과 편지를 주고받고―침묵은 따가운 침묵이야. / 나는 가시덤불을 헤치듯 기쁨의 시간을 지나왔어.―소년은 소녀가 있는 숲으로 향한다.





 어디에서나 시를 찾던 소녀는 결국 시를 쓰게 된다. 한때 우리의 모습이었을 소녀는 삶 속에서 아름다움―곧 시―을 포착하고 이를 소중히 여기고, 또 혼자만 알고 있지 않으려고 하는 시인의 마음을 가졌다. 가장 맛있는 체리는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만큼 현명한 소녀는 홀로 바다를 떠나 도시로 향할 만큼 용감했고, 어쩌면 그만큼 시를 사랑했거나 시인의 모습이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소녀가 시인을 찾아 소년과 바다의 도시를 떠날 때, 나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바로 자기 자신인 시인을 다른 어디에서 찾는가 하고. 그때까지 소녀는 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언제나 시인이었다. 시인의 마음으로 보는 시인의 눈을 가졌으므로.





 읽고 또 읽고 싶은 하나의 시뿐만 아니라 그림과도 사랑에 빠졌다. 바다 위에 새빨간 해를 보고 마음이 울렸다. 저건 필시 바다 위의 해, 바다에서 태어난 이 혹은 바다를 깊이 사랑하는 이만이 바다 위에 떠오른 해를 늘 봐온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해의 모습이었다. 바다와 시를 사랑하는 사람, 일상에서 시를 찾아왔거나 찾고 싶은 사람, 연말이 되어 따뜻한 그림책으로 마음을 훈훈하게 데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어른에게도 좋지만, 아이들에게도 읽히기에 너무 좋을 것 같다. 어쩌면 어른들이 한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이 시를 아이들은 단변에 이해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도 쓰기 시작하지 않을까? 그들이 지닌 시인의 눈으로 보고는 마음에 품고 있던 그들의 시를. 그렇게 우리의 도시에도 시가 돌아오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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