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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13. 2020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을 보고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온전한 여성들의 이야기

 


<365>와 <왓쳐>를 연달아 본 후 평이 좋은 드라마가 또 없을까 열심히 검색하다가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이 명작이라는 추천글을 많이 보았다. <비밀의 숲> 시즌 2가 나오기 전, <홈랜드> 시즌8이 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전, <빅 리틀 라이즈> 시즌3가 왓챠플레이에 풀리기 전에 좋은 한국 드라마가 있으면 하나씩 끝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왓쳐> 다음 작품으로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을 보기로 했다.




 첫 화에서는 분위기가 생각보다 무섭고, 배우 문근영의 연기가 좋다고만 생각했다. 흡입력이 엄청나서 참을 수 없이 다음 화를 봐야 하는 그런 첫 화는 아니였기 때문에, 이걸 계속 봐야하나(<왓쳐> 초반에도 들었던 의문) 고민을 했는데, 옆에서 드라마를 같이 보던 엄마가 더 보기를 매우 원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나도 다음 화가 궁금해져서 끝까지 보게 되었다. 배우 연기나 대본, 연출 등 어느 하나 아쉬운 게 없었고,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좋은 작품이고, 다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감상을 쓰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좋았던 것은, 이 작품이 오로지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이 작품을 보기로 선택한 것도, 화자가 여성이기 때문이었지만 알아차린 것은 드라마의 중반부에 가서였다. 그때부터 피해자의 굴레가 어떻게 여성에서 여성으로 이루어지는지, 단단한 남성들의 연대가 서로를 어떻게 보호하고 여성들을 밥그릇 싸움에서 아예 배제시킴으로써 여성이 어떻게 서로를 적대시하게 되는지를 의식하며 보게 되었다. 이 작가가 여성을 전면부에 배치시키고 각각의 캐릭터가 처한 현실을 이해할 수밖에 없도록(물론 이러한 메인 스토리에서 남성 캐릭터들은 빠진다.) 그려내는 방식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같은 작가의 작품 <붉은 달 푸른 해>를 막 시작한 참이다.




1. 정작 피해자인 여성이 괴물이, 가해자인 남성은 은폐되는 비극에 대하여

 이 드라마는 주인공인 한소윤이 김혜진의 사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을 파헤치며 전개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느 시점까지는 윤지숙(배우 신은경)은 부잣집 사모님인 현재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을 찾아온 딸 김혜진을 살해한,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윤지숙이 15살인 나이에 성폭행당하여 낳게 된 김혜진을 임신거부증으로 인해 괴물로 인식하며, 그 트라우마로 인해 현재까지도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기 전까지, 진실을 쫓는 한소윤의 눈에는(그리고 시청자들의 눈에는) 지숙이 틀림없는 김혜진이 추적하던 마을의 괴물로 보인다.



 그러나 윤지숙이 애써 감추고 싶어했던 비밀이 드러나고, 나는 그를 전부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그저 살고자 발버둥쳤을 뿐이라는 것을.




 성폭행범은 지나간 과거를 왜 들춰서 자신의 가정을 무너뜨리려고 하냐고 되려 화를 낸다. 다른 피해자가 한 명 더(죽은 딸까지 포함하면 둘) 있으나, 공소시효가 지난 관계로 마찬가지로 처벌 불가하다. 신은경은 죽은 딸 위로 끔찍한 기억이 겹쳐보여 발작처럼 그의 목을 짓누르고, 결국은 실형을 살게 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진짜 가해자는 문제 없이 새 삶을 사는 이 드라마의 설정이 현실과 지나치게 똑 닮았다. 연쇄살인범 강필성이 윤지숙에 비해 얼마나 무거운 형을 살았을지가 궁금해진다.

 


 실제 김혜진을 죽인 이도 성폭행범의 아내였던 이 드라마의 설정이 좋았다. 이렇게, 이 드라마는 온전히 여성의 이야기이구나 싶었다. 할레드 호세이니 저 <천개의 찬란한 태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남자들의 손가락은 나침반처럼 정확히 여성을 향한다고.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자, 수많은 여성들을 짓밟고 평생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 트라우마의 제공자는 본인이 피해자라고 억울하다는듯 항변한다. 성폭행은 단지, 젊었을 때 한 순간의 실수일 뿐이라고. 이렇게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저지르는 범죄들은 아주 간편하게 "실수"로 치부되는 건 드라마에서만이 아니다. 여성이 남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면 천인공노할 악마가 되어 온 세상이 떠들썩할 것이 분명한데도. 이래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인가?




2. 윤지숙 - 유나 - 김혜진의 관계성에 대하여

  드라마의 어느 시점부터 유나-김혜진이 자매 지간일 것이라고, 그래서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이끌렸던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윤지숙을 포함한 이 셋의 그림은 묘했다. 수차례 나오는 윤지숙과 김혜진이 싸우는 장면에서 유나가 소리지르는 모습 외에, 마지막 화에서 새롭게 등장한 장면이 나는 너무 좋았다. 다정한 윤지숙과 유나를 부럽고 그리운 눈으로 쳐다보는 김혜진의 모습에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얼마나 오랫동안 엄마를 그리워했을지가 느껴져서 좋았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김혜진이 의도적으로 윤지숙에게, 윤지숙의 남편에게 접근하여 불륜을 저지른 것이 돈 때문이었는지, 자신을 버린 엄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애틋했다.  



 윤지숙을 미워할 수 없기만 한 것이 아니라, 15살의 어린 소녀로 보고, 연민과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탁월한 대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김혜진이 성폭행범의 집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윤지숙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성급하게 집 안으로 들어간다. 위험한 곳이므로, "아이"를 데리고 나와야했으니까. 김혜진이 죽기 전에 그 마음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되면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그 마음이 눈녹듯 쉽게 녹아버렸을텐데. 가끔은 부모보다 자식의 사랑이 더 맹목적인 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데가 있다. 오갈데 없이, 다른 의지할 곳 없이 약자인 아이가 가지는 마음은, <동백꽃 필 무렵>에서 필구가 외쳤듯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일 것이므로.




3. 핏줄과 가족의 연관성에 대하여

 이 드라마의 메인 캐릭터 한소윤이 김혜진의 살해자를 필사적으로 찾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자신의 언니이기 때문에. 김혜진은 입양아로 본인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자매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그가 자신을 엄마처럼 키워줬던 언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드라마에 수차례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피 한 방울 안 석였으면서,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 핏줄 같다고 다 가족이에요? "가족"이 대체 무엇이관대. 우리가 가족에 부여하는 의미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또 그렇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허울뿐인 가족의 껍데기라도 지키고 싶어하는 서기현이나, 본인을 정신병원에 가둔 엄마여도 손을 잡고 위로하는 유나는 아이로서 가정과 부모에게 얼마나 의존적이고 맹목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이것이다. 수감된 윤지숙을 찾아가, 우리 언니는 괴물이 아니에요. 내 언니고, 우리 엄마아빠의 딸이라고 말하는 한소윤에게 마음 어느 한 켠에 안도한듯 웃는 윤지숙의 모습이 가슴아팠다. 사람의 마음은 왜 이렇게 복잡하고 나도 모르는 감정들로 켜켜이 쌓여 있어서 어려운지. 윤지숙에게 김혜진은 결국 괴물이자, 괴물때문에 생긴 내 상처의 생생한 흔적이면서도 마음의 깊은 한구석에서는 그의 아이였던 것이다.





4. 피해자인 여성에게 지워지는 의무, 그 무거움에 대하여

  윤지숙에 이은 피해자인 식당집 주인 아주머니는 범죄자에게서 물려받은 유전병으로 인해 딸을 잃는다. 딸인 가영이 숲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자칫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똑같은 피해를 당할 뻔한다. 만약 윤지숙이, 가영이의 엄마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이 문제를 공론화시켰더라면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여성은 피해자로서 생존해야 하는 버거움을 딛고 윤리의식마저 갖춰야 하는 것이다.(게다가 가해자를 "배려"해줄 친절함마저 갖추길 요구받는다.)  





 나도 강원도에서, 강원도 중에서도 작은 동네, 그 안에서도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마을 아치아라 안에서 진실을 어떻게 은폐하게 되는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끝까지 언니를 찾는 한소윤의 집요함이 그 캐릭터를 꽤 평면적으로 만들었을 수 있으나, 그런 누군가가 없었더라면 죽은 김혜진은 누구도 찾지 않은 채 잊혀졌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김혜진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을들 찾아내고 오랜기간 묻혀있었던 비밀을 들춰낼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는 유나와 그 외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신기"다. 결국 여성의 피해사실과 누명은 일종의 기적(그것도 다른 여성으로부터 비롯된)이 아니라면 확인받지도, 구제될 수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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