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당한 아이들의 세계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감상

 코로나19의 시대, 좋은 드라마를 찾아서 도장깨기를 하고 있다. 

 훌륭한 외국 작품은 너무도 많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 세계를 그린 작품을 보고 싶었다. 내가 살아 숨쉬는 이 공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우리의 '말맛'이 주는 안정감, 설명하고 이해할 필요 없이 내가 먼저 느끼는 자연스러움이 편했기 때문이다.

1. "그건 학대예요."

 이 드라마의 가장 좋은 점은 정확한 언어 사용이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아이를 감금, 폭행 등 학대하던 엄마에게 "빛나 어머님, 당신은 아이를 학대한 겁니다."라고 정확히 꼬집는 차우경이 말하는 장면이 참 좋았다. 형사 전수영이 "애기 하나 먹고"라는 시구를 듣고 아동학대네요, 라고 바로 말을 붙이는 장면도. 아직 어린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학대가 얼마나 도처에 널려있는가. 

 빛나 어머니는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했고, 그 증거가 빛나의 온 몸에 버젓이 남아있었음에도, 본인이 아동 학대에 목소리 높이던 운동가였음에도 미처 자신이 아이를 학대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 

 영특한 빛나의 입으로도, 나는 엄마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이 있다.  많은 부모님들이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방법을 몰랐을 거라고, 혹은 다 너를 위해서였다고 변명하지만, 잠시 차우경의 말을 들어보시라. 당신은 아이를 학대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상당히 교육적이다. 아동센터 상담사인 차우경을 통해서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이는 어떤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2. 용서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 세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부모와 자식들이, 또는 부모이자 자식인 이들이 공감할 빛나 어머니는 이렇게 사과한다.

"용서하지 마."

 이것이 가해자의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이미 사과했잖아, 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보다. 이미 가해자가 되어버린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것이 적어도, 차우경의 새엄마처럼 이미 나는 가해자로서 고통받았다고 큰소리치는 방식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사과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1. 변명하지 않을 것 (ex. 미안해. 그런데..)

 2. 잘못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할 것 (ex. 너도 잘 한 것 없잖아.)

 2. 재발 방지를 위하여 조치를 취할 것 (사과해놓고 같은 잘못이 반복되면 안 됨.)

3. 학대당한 아이들의 세계

 이 드라마에는 한때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었던 어른들이 등장한다. 학대로부터 완전이 자유로웠던 성인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자라난 어른들은 다시 학대를 되물림하거나, 차우경처럼 고통에 찬 어린아이로 남아있거나, 대다수의 경우 여전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드라마가 좋았던 점은, 학대가 남기는 상흔이 얼마나 뿌리깊은지 제대로 보여준다는 것. 이미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 있는 성인이 되었고, 가해자는 이제 걸음을 걷는 것도 부축을 받아야하는 신세인데도, 차은호처럼 지팡이에 얻어맞게 된다. 웬만큼 싸움을 잘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는데, 큰소리 한 번 못내고 전수영처럼 가만히 몸을 웅크리게 된다. 자신을 존중하고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학대당한 아이들이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지닌 채 고스란히 자라서 활보하는 세계는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가.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로 풀고 싶은 말이 아직도 너무 많다. 오늘은 너무 길어지기 전에 여기까지. 정주행할 좋은 드라마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