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은 Jul 30. 2020

<자기만의 방>을 읽고

이 책을 읽은 후의 나는 이전의 나와 다를 수밖에

 누구나 그런 책이 있다. 그렇게 좋다는데, 꼭 읽어야 한다는데. 책의 제목이며 내용도 이미 익히 들어 알고는 있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막상 읽기까지는 영 결심이 안 서는. 나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그런 책이었다. 책을 읽으려고 여러 번 시도도 했었다. 도서관에서도 빌려보았으나 매번 강연을 시작하고 강연 속 주인공이 산책하던 장면에서 책을 덮곤 했었다. 그러나 몇 페이지만 더 읽으면, 음식 묘사와 연회 뒤에 다음날 도서관으로 가서 진정으로 "여성과 픽션"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그 지점까지만 가면, 이 책이 왜 고전인지 알게 된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때부터는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게 된다는 것을.




<자기만의 방>은 왜 고전이 되었나?


 여성이 처한 상황의 문제점과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자기만의 수입(연 5백파운드)과 자기만의 방(곧 정신적, 경제적 자유)이라는 주장을 근거들과 함께 유려한 그릇에 담아내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제대로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통찰력 있는 문장들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주장을 너무나도 효과적으로 담아낸 이 책의 구성이 감탄스러웠다.

 



  왜 여성들이 역사책에 오르지 못하고, 뛰어난 여성 예술가들이 이토록 부족한지(왜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은 예술가로서 성공할 수 없었는가)에 대하여 버지니아 울프는 정곡을 찌른다. 여성은 교육과 기회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었고, 남성을 "두 배로 커다랗게 비추는 달콤한 거울" 역할에 머물러왔다고. 그리고 그 대신 여성은 본래 모습보다 반쯤 작게 축소된 채로 존재했을 것이다. 따라서 여성이 현실을 직시하고 벽을 깨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와 같은 책들이 꼭 필요하다. 이 책이 더욱 좋았던 것은, 여성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이고도 희망적인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은 더욱 자유로워지고, 한계를 뛰어넘고, 마침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 






바로 이거예요.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좌우돼요. 시는 지적 자유에 좌우되고요. 그리고 여성은 지난 2백 년뿐만 아니라 세상이 열린 이래 줄곧 가난했어요. 여성의 지적 자유는 고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못했어요. 그러므로 여성이 시를 쓸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지요. 그것이 바로 제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하는 까닭이에요.






 얇으면서도 보석같은 내용들로 꽉 차 있는, 그래서 요약이 어려운 <자기만의 방>은  후대의 여성들에 대한 권고로 끝을 맺는다. 이 말들 하나하나가 좋아서, 어떤 마음으로 울프가 강연에 서고, 글을 써내려갔는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저렸다. 영화 <밤쉘>에서 첫 성폭행 피해자로서 고발한 그레천이, "절벽 위에서 혼자 뛰어내렸다"며 절망할 때 느꼈던, 그리고 요즘의 분노를 금할 수 없던 많은 사건들 내내 생각했던 것이 있다. 바로, 어떤 여성도 사회로부터 소외되도록 손 놓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글을 양분삼아 힘을 내야하는 것이다.





저는 여러분이 더욱 고귀하고, 더욱 숭고해야 한다는 의무를 기억하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싶어요. 얼마나 많은 일이 여러분에게 달렸는지, 우리의 앞날에 여러분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러분이 잊지 않게끔 하고 싶어요. 





 절망의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지만, 세상이 변하는 날이 오기는 할지 의심스럽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시대에 비하여 상황이 좋아졌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주어진 자유와 권리만큼이나, 그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조언대로라면 우리는 스스로를 온전히 지키고 생활의 활기를 얻기 위하여 경제적 자유를 쟁취해야만 하며, 생각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더 넓게 뻗어나가야만 하며, 또 계속해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새로운 레퍼런스를 창조해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든 그로부터 얻어낸 우리만의 독자적인 생각이든. 픽션이 아니라도, 그 무엇이라도.






그래서 저는 주제가 사소하든 거창하든 절대 망설이지 말고 온갖 종류의 책을 써달라고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어요. 저는 여러분이 무슨 수를 쓰든 충분한 돈을 스스로 마련해서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고, 세상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책을 읽으며 몽상을 하고, 길모퉁이를 거닐며 생각의 낚싯줄을 강 속 깊이 드리울 수 있기를 바라요. 
매거진의 이전글 일기쓰기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싶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