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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02. 2020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나는 몬태나의 겨울을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책 표지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제목으로는 연상할 수 없었던 책의 내용은, JTBC 조민진 기자가 런던에서 1년간 연수생활을 하며 기록한 것이었다. 런던의 날씨에 대한 내용인가 했는데, 한 변덕 하는 런던의 날씨 이야기도 꽤 있고, 작가가 특히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한 꼭지마다 있었다. 일화 하나에 그림 하나.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내 인생에 그림을 한 편씩 끼워넣고 싶기 때문이었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 그저 취미로 그림을 보는 사람이 림을 보는 시선을 읽고 싶었다. 혼자 전시회 가서 나만의 속도와 흐름으로 관람하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그림을 볼까, 그들의 마음에 이 그림이 어떻게 자리잡을지 늘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작가의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러 떠난 1년"이 고스란히 나에게 밀려들어오는 것이었다. 읽는 내내 내가 런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서 40년 넘게 살던 직장인이 런던에서 1년간 어떻게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익혀나가는지, 그 과정을 함께 겪어나가는 것 같아서 설레기도, 또 내 마음의 휴식이 되기도 했다. 진정한 휴식을 위해서는, 치열하게 가만히 있기보다는 내 마음의 풍경을 바꾸어줘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 19의 시대, 어디 가기도 무섭고 집에만 있기도 갑갑한 이 때에 내게 딱 필요한 책이 또 나를 찾아왔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내 인생 첫 유럽여행을 계획할 때, 오만한 섬나라는 가지 않겠다고 아주 단호하게 결정해버렸다. 실은 파리로 어떻게 넘어갈까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려버린 건데, 그동안 어설프게 읽은 책에서 영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가 나에게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정이 그렇게 후회가 될 수가 없지만, 이 책을 통해서 언젠가 런던에서 전시회를 가고, 와인을 마시고, 마들렌을 먹고 있을 나를 그려볼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그림을 갖고 산다. 그 그림들은 어제의 회고이거나, 오늘의 일기이거나, 내일의 희망이거나, 먼 미래의 꿈이다. 산다는 건 수많은 그림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남기는 일이다. 




 내 마음에도 그런 그림들이 있다. 1년간 Monata 주립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는데, 그곳은 계절이 7월, 그리고 겨울뿐이라고 할 정도로 겨울이 길고 추운 곳이었다. 비행기를 막 타기 전, 페이스북에는 이미 도착한 교환학생들이 여기 생각보다 춥지 않아, 방금 물을 쏟았는데 얼었어, 라고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며 조금 겁이 났었다. 미지의 세계로 홀로 떠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처음 도착한 Bozeman은 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 눈이 5월이 다 되어가도록 녹지 않을 줄은 미처 몰랐지.




 그 1년간 나는 배우고 싶던 스페인어를 배우고, 교양수업으로 피아노 레슨에 등록하고, 방학에는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충분한 마음의 휴식을 취했었다. 4년 안에 졸업하는 게 목표이던 터라, 1학기에 17학점을 들으며 매주 쏟아지는 과제에 괴로워하긴 했지만, 그것도 어느새 다 추억이 되어버렸다.




 우여곡절이 있었던 나의 1년은 떠나올 때도 한 바탕 난리였다. 잠시 눈을 붙인 사이 버스 출발 시간이 10분 남아서, 어깨에도 가방, 양손에도 가방을 들고 꽁꽁 얼어 있는 빙판길을 엄청나게 내달렸었다. 내 인생에 그보다 더 스릴 넘치는 달리기가 또 있으면 안 되는데.




 그리고 나는 떠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내 마음 한 조각을 영영 그곳에 두고 왔다는 것을. 그렇게 잃어버린 마음의 한 조각은, 그 시절과 추억이 담겨있어 찾을 수도 채울 수도 없겠지만, 산다는 건 그렇게 이곳저곳에 내 마음을 조금씩 흩뿌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촘촘히 기록한다면, 그것이 내 역사가 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발판이 되겠지. 다른 사람의 꿈같은 1년의 기록을 읽는 것도 예상외로 즐거웠고, 나의 경험들과도 닮은 부분도 꽤 있어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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