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랑하는 책

<서재 결혼시키기>, 앤 패디먼

사랑스러운 책을 발견했다.

내 취향에 꼭 맞는 책의 단점이란,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금세 읽어버린다는 것.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을 해치우고는 입맛을 다시는 어린이처럼. 나는 만족을 모르고 꼭 이 책과 같은 책을 찾겠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1.저자, 앤 패디먼

읽는 내내 작가를 몹시 부러워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몹시 고독하게 자라면서, 뭔 책을 그렇게 읽냐는둥의 타박이나 이상한 눈초리, 눈치를 받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드디어(!) 읽고 싶었던 책들을 맘껏 읽을 수 있으니 도서관으로 즐겁게 향하는 내가 꼭 유난떠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못 말리는 책과 언어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패딩턴 가족의 구성원이며, 결혼 역시 또다른 책벌레와 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싸여져서 사는 그의 삶이 부러웠고, 결혼할 때 책과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과 하면 얼마나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전에는 별로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2.감상문

책의 제목은 익히 들어왔다. 그래서 발행년도를 살펴보니, 꽤 오래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대단한 책벌레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외롭지 않았고, 세상은 역시 아직까지(!) 살만한 곳이란 걸 느꼈다.

(이것이 바로 책에 관한 책을 읽는 즐거움 아닐까?)

ㄱ.여성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가 이 책의 매력 포인트인데,

1)서정적인 문체 : 그것도 (시를 포함하여) 독서가 생활화된 여성만이 쓸 수 있는 글의 분위기란 것이 있다. 아무리 서정적인 남성 작가라도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고 믿는다. 이따금씩 글만으로 성별을 알아낼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꽤 자신 있다.

2)높은 성감수성 :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고, 같이 분노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이심전심이 잘 된다.

3)역할모델 : 나보다 길을 앞서 간 여성들을 보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며, 내 삶의 방향성을 잡고 미래를 그리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ㄴ.참, 그리고 소네트가 궁금해졌다. 그 매력이 뭐길래. 그리고 (어리석게도) 나도 시를 끄적여보고 싶다는 욕심도 조금 생겼다. 어렸을 때 사실 몇 개 써보긴 했는데, 온통 표절이었지만 부모님께 '우리 아이가 시인이 되려나'라는 몹쓸 기대를 가져다주었었다.

ㄷ.삶에 낭만성을 부여하는 그의 방식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극지 탐험 체험기 읽기 좋아하는 것도 특이했으나, 그는 이성적으로 목표를 완수한 극지 탐험가보다, 터무니없는 결정과 낭만성으로 결국 얼어죽고만 탐험가들을 사랑했던 것이다.

내가 늘 생각하는 바인데, 우리 마음 속에 꽤 멋져 보이는 목표를 하나 정해두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지름길을 찾아내어 전력질주한다는 식의 삶은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맞지 않는다. 인생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인데, 첫째로 삶이 내 맘같이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로, 자신의 길은 스스로만이 만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름길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ㄹ. 현장독서라는 것. 이전에 생각해보지 않은 새로운 독서 방식. 오죽하면, 다낭으로 여름휴가를 가서 <인간실격>과 <이방인>을 간 내가 아니겠는가. 나는 오히려, 빌딩숲에서 <월든>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언젠가 한 번 시도해볼 것.

3.책 속의 한줄

우리 독서광들에게 현장 독서가 현장과 아무 상관없는 곳에서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마음의 눈이 문자로 모든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책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어한다.

나 자신이 받아본 최고의 헌사. 그 헌사는 이렇다.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 책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나의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

4.마무리

책을 즐겁게 읽었기에 작가의 다른 책도 꼭 읽으리라 마음먹고 찾아보니, <세렌디피티 수집광>이란 에세이집이 있다. 막상 펼쳐서 이리저리 읽어봤는데 딱히 당장 읽고 싶지는 않아서 도로 꽂아두고 왔다. 언젠가 읽게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