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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7. 2020

통통 튀는 소설을 읽고 싶은 그대에게

<덧니가 보고싶어>, 정세랑 저

 <보건교사 안은영>을 시작으로 정세랑 작가님께 푹 빠져있다.


 <덧니가 보고싶어>는 내가 도서관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빌릴 때까지만 해도 대출중이었는데, 다 읽고 반납하니 마침 책장에 있어서 한 번 펼쳐본 후 바로 빌렸다. 통통튀는 발랄함이 좋았기 때문이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자꾸 축축 쳐져서 그런가? 밖에서 에너지를 얻을 새 없이 소진만 하고 있어서인지, 정세랑 작가님의 상상력이 듬뿍 담긴 글이 필요하다. 숨이 차는 운동을 한 뒤 먹는 이온음료처럼, 영양 보충이 된달까.

 나는 정말 '이야기', 무엇보다도 SF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실감했다. 보석같은 이야기들이 줄줄 꿰어져있는 보석목걸이를 하나씩 꺼내  먹는 느낌. 그리고 나도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 가장 많이 읽은 책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1,2권이다. 생크림케이크를 좋아하지도 않고, 어쩌다가 먹게되면 포크로 싹, 생크림은 밀어내고 먹으면서도 1권 전반에서 풍기는 케이크 냄새가 그렇게 포근하고 맛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 한심하기 짝이 없고 여자를 엄청 좋아하는(보다 정확히는 "밝히는") 남자애를 좋아했는데, 사랑까지는 아니었고 미련 따윈 없어도 내가 그런 놈을 좋아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쪽팔렸고 숨기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부끄러워지다니. 이런 비극을 그런 놈이 내게 남긴 거다. 내 인생에서 별거 아닌 놈이지만, 나는 어쩌면 그때부터 "마음을 줄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온전히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람. 그 마음의 가치를 알고 소중히 여겨줄 사람.

 나는 용기가 재화의 마음을 받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판단)했고, 그래서 보는 내내 속이 좀 상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남자주인공처럼, 정말이지 충분하지가 않아. 그래도, 사람은 사랑과 정과 함께 보낸 시간으로서 비로소 하나가 아닌 둘이 되고, 둘은 하나보다는 견딜만 하니까. 어느 하나가 아깝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생각해보니 재화와 나는 어렴풋이 닮은 것 같다. 내가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같은 사람이라니, 그건 참 매력있고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어쩌면 대부분)의 눈에는 내가 답답하고 의뭉스러운 여자애일 거라는 건 마음아픈 일이다. 나는 어설프고 이상해보여도, 느리고 갑갑해도 늘 솔직하고, 악의가 없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게 내 최선이고, 그리고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거라고. 이제는 조금 나이가 먹어서 내가 말 안해도 내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지는 않고, 내 태도로서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완벽한 가면을 쓰고 있는 그들과 어떻게 해도 마음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는 걸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지친다.

 악몽을 꾼 후에 인생은 악몽같다는 용기의 말이 너무 위로가 되었다. 정확히 요즘 나의 마음이라서, 정말 "악몽"에 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리고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어서. 작가님의 발랄한 유머 속에 이렇게 그의 인생에도 나와 마찬가지로 슬픔도 절망도 비극도 우울도 같이 있었겠구나, 그도 참 많이 아팠었나보다, 생각했다.

 나뭇잎소설은 얼마전 읽은 이도우 작가님의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를 읽으면서 그 매력을 알게 되었다. 이 장편 속에는 나뭇잎 소설이, 그것도 장편과 한땀한땀 이어지는 소설들이 줄줄이 들어있어서, 나도 영감을 받은 인물을 기초로 줄줄이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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