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은 Sep 12. 2020

드라마 <상견니>를 보고

보고싶은 간절한 마음이 데려다주는 곳

햇살이 너무 눈부시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가늘게 뜨더라도 차마 감을 수 없다
그 애를 봐야하니까
 - <상견니>, 천윈루의 일기 중 발췌



 지난 주말 이틀만에 다 본 대만드라마 <상견니>에서 아직까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만드라마를 본 건 처음인데, 원작소설도 곧 살 생각이고 여건이 허락하면 언제든 대만으로 날아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작가는 3년동안 이 책을 썼다는데, 이렇게 여운이 길게 남는 마음 아린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부러울 따름이다.





 많은 추천에도 불구하고 1화를 끝까지 보기가 어려워서 여러 번 포기했었다. 지금은 좋아서 계속 틀어놓고 있는 가수 우바이의 <Last Dance>라는 노래도 마음에 안 들었고, 배우들에게 정도 안 붙었었다. 그래도 미드 <뉴스룸>을 정주행한 뒤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3화까지는 꾹 참고 봤던 것 같다. 한참 흥미진진하게 보는 중간에도 갑자기 궁금하지 않은 인물의 비중이 커져서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본 나는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어서 고민 중이다. 왜 고민이냐면, 아직 안 본 작품이 너무도 많으니까!





 10~20대 혹은 30대를 넘나드는 1인 2역, 3역을 너무 훌륭하게 배우들의 연기도, 보는 내내 내 마음에 녹아들어서 지금은 틈만 나면 틀어놓는 OST도, 뭐 하나 빠짐없이 좋다. 드라마로 먼저 보게 되어서 좋지만, 원작을 쓴 작가님에게도 애틋한 마음이 드는 건, 그가 각 사람의 심리와 마음을 너무나도 잘 들여다본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천윈루가 모쥔제를 사랑에 빠질 수 없었던 이유(자신이 싫어하는 모습을 사랑했기 떄문)에 대한 설명이나, 30대가 된 천윈루에 대한 코멘트가 너무도 좋았다. 담담하게 맞아, 그때 난 우울했었다고 웃을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것. 





 천윈루가 그런 사람이 되었을 때, 여전히 달처럼 담담하게 그 옆에 있을 모쥔제와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건 나뿐이 아니겠지. 실은 이 작품에 천윈루가 있어서 나에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위로가 되었는데, 늘 나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뭔가가 잘못되었거나 다르거나 문제가 있어서 사는 게 벅차고 힘들지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보이는 성격에 반응하고 인식할 뿐이라는 것아 내게는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천윈루가 나와 너무도 닮은 것 같아서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천윈루도 그렇고, <작은 아씨들>의 베스도 그렇고, 내성적인 여성에게 재미있는 일은 하나도 안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싶어 아쉽고 답답한 마음이 든다만. 나는 천윈루의 마음의 결이 너무 좋았다. 그가 쓰는 일기의 문장들도, 리쯔웨이를 동경하는 마음도. 





 천윈루와 왕취안성이 그랬듯 어떤 사람에게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무서울 것이다. 적어도 그런 시기를 지나는 사람이 있겠지. 막다른 벼랑 끝에서 내몰리듯 선택하게 되었을 끝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쓴 작가가 얼마나 섬세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동안 많이 다쳤을지, 사는 내내 성향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얼마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왔을지 짐작이 가서 이 작품에 대한 마음이 더 커진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엔딩과 에필로그 영상을 나는 꽤 좋게 봤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 잃는 것, 10년이 넘게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기다리는 중에 가장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 사랑에 빠지기 위해 죽을 걸 알면서 비행기를 타는 것. 이런 일들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든 만나게 되었을 두 사람이, 각자가 생각하는 가능한 방식으로 만나려고 하다가 모든 인연의 줄이 엉켜버린 것이 아닐지.





 실은 황위쉬안처럼 절절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드라마 초입부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얼마나 사랑하고, 보고싶고 놓지 못하면 현실을 부정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과거의 끈을 놓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본인과는 너무 다른 천윈루를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그 마음의 폭이 좋았다. 그래서 자꾸 좋은 사람들이 곁을 지켜주나봐. 





 두어명을 빼놓고 빠짐없이 등장인물들이 사랑스럽고 이입이 되는 드라마를 오랜만에 만났다. 간절히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 그래서 어떻게서든 과거로 돌아가서 현재를 바꿔보려는 사람들에 대한 작품들이 계속 나오는 건 그만큼 비슷한 결의 고통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서겠지.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이 드라마를 한 번 더 보고, 원작소설도 개정판이 나오는 대로 다시 살 예정이다.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요즘 직장에서 많이 지치고 힘들었는데 버릇처럼 나를 자책하고 곱씹기보다 그저 이 드라마가 주는 여운에 푹 빠져있을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를 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