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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Sep 30. 2020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고

두 고래의 만남에 행복한 새우

 정세랑 작가님의 책 <보건교사 안은영>은 읽는 내내, 그리고 읽은 후에도 기뻤지만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에는 얼떨떨했다. 영상화가 되면 어떤 작품으로 탄생할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상상력이 빈곤했다기보다는 늘 텍스트가 더 익숙했던 탓이라고 믿고 싶다. 에피소드 6개를 모두 본 지금, 나는 정세랑 작가님과 이경미 감독님의 만남에 그저 행복한 시청자가 되었다. 그리고 시즌 2를 은근히 기다리게 된다. 아직 풀어낼 이야기가 넉넉히 남아있는 것 같아서.(맥켄지를 중심으로 풀어낼 이야기가 에피소드 6개만큼은 충분히 남아있는 것 같다!) 그만큼의 여지도 줬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래오래 기다리던 첫 화를 3분을 채우지 못하고 꺼버렸다. 내가 읽은 통통 튀고 그저 귀여운 책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이 드라마를 받아들이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약간은 기괴한 드라마 전반의 감성이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과 합쳐져서 더 강하게 와닿았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생각했는데, 이게 텍스트와 영상물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눈으로 직접 볼 때는 글로 읽을 때처럼 머릿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내 멋대로 지어내는 게 아니니까, 남이 그린 세계를 보는 게 더 자극적이게 느껴질 수밖에.





 책을 읽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드라마를 봤더니, 보면서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랐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강선이 이야기. 마지막에 갈수록 인표의 존재감이 뚜렷해져서일까? 안은영의 인생에 너무 중요한 획을 그어줬던 강선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럴수록 칙칙하게 가지 말고 달리는 모험만화로 가야 돼.

다치지 말고, 유쾌하게 가란 말이야.

사람들한테 사랑받으면서 살라고.




 대사도 좋았지만 학생 강선의 연기도 참 좋았다. 저 서툰 학생의 따뜻하고 애정어린 참견이 학생 안은영의 마음에 가닿았고, 마침내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씩씩한 보건교사 안은영이 탄생할 수 있었다니 다행이다. 안은영의 눈에 비친 젤리의 모습도 귀엽고 다룰만 하게 바뀌어서 다행이고. 나는 안은영을 좀 더 동그랗고 어리숙한 캐릭터로 생각했었는데, 학생 강선이 그린 명랑만화의 캐릭터가 배우 정유미와 너무 닮아있어서 귀엽고 반가웠다.





 1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학생 배우들의 연기에 빠졌다. 꼭 진짜 때묻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학생들 모습같아서. 본래 학생들이 나오는 영상 창작물을 잘 안 보는 편이지만, 내가 본 것 중 정말 현실적인 학생들의 모습이 었다. 나는 드라마 <학교> 세대가 아니지만, 이 <보건교사 안은영>도 시리즈로 계속 나오고, 또 어린 학생들의 등용문과 같이 자리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좋았던 배우는 비중이 꽤 있었던 해파리 아라. 내가 가장 궁금했던 배우는 옴잡이 백혜민이었는데 백제시대부터 계속 계속 태어난 귀엽고 올망졸망한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정세랑 작가님의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직조했을까? 이 모든 이야기의 씨앗은 어디에서 왔을지 궁금해졌다. 영상으로 만나니 그의 이야기가 또 다르게 느껴졌고, 본격적으로 대본을 쓴다면 어떤 영상이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멋진 원작과 감독, 그리고 배우들까지. 게다가 연출과 OST 등등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맞아떨어져서 탄생한 이 귀한 작품을 추석 전에 다 보다니.. 이제 무얼 본담.





 드라마를 다 본 뒤에도 자꾸 생각이 나고, 마음에 남기고 싶은 것들이 아직 많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에 에너지를 받은 듯 밤이 되면 학교 위를 유유히 지나가는 커다란 고래 한 마리, 한문 선생님의 손을 잡으면 힘도 마음도 충전이 되던 보건교사 안은영의 상기된 미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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