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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Sep 27. 2020

여성과 음식, 허기와 식욕에 대하여

애니타 존스턴의 <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를 읽고

 제목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부제는 <식욕 뒤에 감춰진 여성의 상처와 욕망>.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먹는 행위는 당시의 마음상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특히 여성들에게는. 나 또한 인생의 어느 시점에 어떤 변화를 거치느냐에 따라서 극도로 먹지 않거나 먹기를 거듭했다. 때로는 몸무게나 내 외모와는 관계가 없이, 실은 음식도 아닌 다른 대상에 대한 허기와 욕구이기도, 거부이기도 했다. 





 이 땅의 여성들 중에 경미한 식이장애를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외에도 매일매일 음식과 사투를 벌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본인이 왜 그런 방식으로 먹는지, 또 왜 꼭 그 음식을 필요로 하는지는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수수꼐끼인지도 모른다. 또한 먹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람의 인생에서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또 의지로는 절대로 통제 불가능한 것이도 하다.





  여성의 식욕과 허기에 대한 책들은 이전에도 읽은 적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감정식사>였는데 이 책을 읽은 후로 내 마음상태나 행동 패턴에 조금의 변화도 없었기에 아무래도 책은 효과가 없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책에 수록되어 있는 풍부한 신화와 이야기들, 그리고 독자의 인생을 바꿔줄 책이라는 찬사들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이 아주, 아주 좋았다. 지금껏 음식과 여성에 대해서 다룬 어떤 책보다. 단순히 내가 이야기들을 좋아하고, 또 그 이야기들이 풍성히 들어있는 책이라서가 아니다. 이 책은 섭식장애에 시달리는 여성을 환자나 피해자로 보지 않고 특별하고 섬세한 사람으로 존중한다. 또한, 극도로 감정적으로 먹던 그 습관이 분명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도움이 되었음을 인정하라고 말해준다. 음식보다는 마음에 대한 책이었으며, 스스로를 존중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것을 말해주는 따뜻한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몇 주 정도 지난 지금, 어떤 변화들이 생겼냐고? 





 허기가 채워졌는데도 음식이 먹고 싶을 때 나는 음식이 필요한 게 아니란 걸 인지한다. 내 마음 속에 무슨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는지 짚어본다. 음식마다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이라고 꼬리표를 붙이지 않는다. 다만, 특정 음식이 먹고 싶으면 그 음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고 내 마음을 점검한다. 내 마음에 어떤 느낌이 들어왔을 때, 무시하지 않고 그 통찰력을 존중한다. 내가 예민한지, 잘못 느낀 것인지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다. 꿈을 꾸면, 그 꿈을 온전히 신뢰하고 기록한 후에 내 마음이 나에게 전하려는 메세지를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이 책에 나온 여성들처럼 나도 스스로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아직도 "여성성"이라는 말을 이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매우 혼란스럽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현재로서는 여성성이라는 단어 이외에 명명하기 어려운 이 본성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여성의 타고난 지혜, 직관, 은유, 창조성, 생명력, 자연과의 합일 등을 포괄하여 "여성성"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그 여성성을 거부하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므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내면의 목소리, 즉 직관에 귀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이렇게 적으니 굉장히 뜬구름잡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전에 읽은 책 <감정식사>와 이 책에서 동일하게 추천하는 요법이 하나 있다. 바로 식사일지를 기록할 것. 내가 절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이것. 그래도 아침일기를 매일 쓰고 있는 지금(나도 놀랍다.), 혹여 식사일지를 쓰게 될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하자면, 이 식사일지룰 기록할 때는 식사한 직후에 다음의 항목들을 포함하여 적는 것이 좋다.

 - 날짜, 먹거나 마신 시간, 먹은 음식, 먹기 직전에 하던 일과 생각, 먹기 직전에 느낀 감정, 배가 고팠는지의 여부, 먹은 음식을 어떤 식으로든 몸 밖으로 내보냈는지의 여부.





 이 책은 음식과의 문제가 없어도(혹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더라도) 여성성을 억압하고 무시하는 사회에서 적응하고 몸을 억지로 끼워맞추느라 괴로워하고 있는 모든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지금 이 시점에 내게 꼭 필요했던 책을 만나게 되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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