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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Feb 28. 2023

#3 마음이 가난한 날

 바쁜 하루 사이에 끼어있는 나를 보며 낯선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그곳을 향해 굴러가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여기에 멀뚱이 서있는 걸까요. 무엇을 해야 하면 좋을지 모르겠고 내가 어떤 가치를 가진 존재인지도 모를 순간이 있습니다. 익숙한 공간에 비스듬히 걸쳐진 이방인 같고 동그라미 사이의 사다리꼴 같은 이상한 내가 있어요. 이런 날은 꼭 실수도 많습니다. 평소라면 잘하지 않을 사소한 음이탈부터 어색한 표정까지 완벽한 불협화음을 이루는 하루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가고 나는 괜히 눈치를 보며 더 작아지기도 합니다. 속상하지만 누구의 탓을 하거나 피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괜히 입안이 씁쓸해지고 속상한데 만날 사람은 없고 연락처를 뒤적거려도 마음 편히 연락할 사람하나 없는 그런 날입니다. 그동안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온 걸까 하는 회의감도 들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그런 날 말이에요.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없고 어느 부분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도 않아서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만 같아요.

능력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아닐 테지만 작은 실패 경험에 내가 야금야금 잡아먹히고 있어요.


 어느 날은 모든 것이 가득해서 다른 이에게 나눠주고도 한참이 남았는데, 오늘은 가진 것을 탈탈 털고 바닥까지 긁어내도 손바닥 하나를 채우기 어려워서 나에게 쏟기에도 부족합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요. 분명 작년에 비하면 더 많은 것을 가졌고, 수많은 기회와 잴 수 없는 마음을 받았는데 말이에요. 통장 속의 숫자가 늘어가고 가진 것이 많아져도 아무것도 없던 나보다 가난한 날이 있습니다. 아직 마음을 채울 수 있을 만큼 가지지 못해서 일까요?


어떤 날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서 물 한 모금도 귀찮은가 하면 또 다른 날은 하루종일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고 있습니다. 배가 고픈가 했는데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는 것을 보니 고픈 건 배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는 대로 입에 넣고 씹고 삼키기를 반복해도 내 안에 어딘가는 허전합니다. 시린 겨울바람이 옷 안에 들어와 살갗을 파고드는 것처럼 어딘가 막지 못한 빈칸이 생겼나 봅니다.


 가만히 몸을 말고 무릎을 껴안은 채 멍하니 방안의 공기만 바라보고 있어요. 할 일은 자꾸 쌓여가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 같아서 풀어낼 엄두도 못 내고 구석에 밀어두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초라해 보일 때면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어떤 표정으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런 때가 쌓이면 꼬질꼬질 빛바랜 넝마 같은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혼자인 시간이 길어집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주가 흘러도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잠시 비상등을 켜야겠어요.


 특별한 일정이 없더라도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옷을 찾아 입으며 가볍게 외출준비를 합니다. 장소는 집에서 삼십  정도 걸리는 거리의 카페가 좋겠어요. 구체적인 장소가 정해지지 않아도 삼십 분에서  시간 정도 걸을 준비를 하는 거예요. 이런 날을 대비해 모아둔  원짜리 한두 장을 챙겨서 맛있는  먹고 오라며 스스로에게 용돈을 쥐어줍니다. 오랜만에 내딛는 발걸음이 나쁘지 않아요. 볼에 닿는 서늘한 공기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느껴지는 익숙한 냄새, 지나가는 사람과 차들의 소란스러움이 입체적으로 느껴집니다. 길을 걷다가 주변을 살피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날씨를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는   하나예요. 자주 가는 카페에 앉아있으면 집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새로운 기분이 불어옵니다. 공간의 환기가 주는 힘은 기분마저 바꾸고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만들어주기도 해요. 돌아오는 길엔 조금  가벼워진 머릿속으로 발걸음이 조금은 편안해집니다.


온통 회색빛으로 빠져버린 나의 색을 채우고 돌아온 날에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채워집니다. 산책을 하며 복잡한 머릿속을 풀어내는 작업을 했다면 돌아와서는 엉키지 않도록 조금씩 감아야 합니다. 바닥으로 떨어져서 제멋대로 풀어헤쳐진 두루마리 휴지를 마는 것처럼 천천히 감아서 정리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펜을 잡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쏟아냅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뿐인데, 가난했던 어딘가가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니라 힘들고 속상했던 그 순간을 들여다봐줄 나긋한 눈 맞춤이 필요했던 걸까요.        


눈을 돌려 보이는 모든 대상에 나를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럴 때일수록 가만히 나를 바라볼 시간이 필요해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다가는 어느새 작아져버린 내가 있습니다. 비교하고 부러워할만한 것은 수없이 많은데 그때마다 부족한 부분을 바라보며 아쉬워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가지지 못한 것에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가진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기도 어렵지만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이 없다면 채울 수 없는 허기와 궁핍함에 허덕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요.

기쁜 순간에 축하하고, 슬픔 곁에 있어주고, 작은 변화를 응원해 주는 방법을 한 걸음씩 배워가는 중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해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작고 사소한 부분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게 마음이 넉넉하고 풍요로운, 그런 사람말이에요.


 마음이 가난하고 채울 수 없는 자리를 만나게 되면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해 줄래요.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그런 일은 어떤 방법으로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내 안에서 생긴 문제의 답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마음 어딘가에 힌트가 숨어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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