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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24. 2023

#2 다양한 시간의 기분

빛을 인식하고 눈이 떠진 건지,  반복적으로 울려대는 알람소리를 끄기 위해 몸을 일으킨 건지, 그것도 아니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아침을 밝아오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떤 날은 온몸이 뻐근하게 저려서 인상을 쓰며 눈을 뜨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창가로부터 가벼이 내린 햇볕을 맞으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아침은 느닷없이 개입되는 알람에 화들짝 놀라서 몸을 반쯤 일으킵니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웅크린 채 오늘 일정이 취소되길 바라며 졸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되면 느리게 이불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아침을 깨울 노래를 틀고 기지개를 한번 쭉 켜면 밤새 뭉쳤던 등과 어깨가 잠시 시원해지는 것 같아요. 이불 밖을 나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창과 방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일입니다.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목을 두어 번 돌리고 세수를 해도 여전히 졸린 눈은 잘 떠지지 않습니다. 로션을 찹찹바르고 뻐근한 목을 몇 번 꺾어도 좀처럼 컨디션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기고 나온 것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스스로를 이겨낸 멋진 사람이에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밖을 나섭니다.


헐레벌떡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나가서 빠른 탑승에 성공하면 시작부터 좋은 신호입니다. 출퇴근 시간에 앉을자리가 있을 땐 내적으로 춤을 추며 즐거워하지만 옆 사람들에겐 그저 삶에 치인 사회인으로 보일지도 몰라요. 메마른 표정너머로 사실은 포근한 이불속을 상상하고 있거나 어제 봤던 영상 속의 털북숭이 친구를 떠올리고 있다는 건 모르겠지요. 어쩌면 저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신도 나처럼 출근도 전에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가끔 눈이 마주친 당신은 무표정을 넘어 화가 난듯한 얼굴로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기곤 합니다. 실은 제가 많이 들었던 질문이에요.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

나의 표정을 보며 가끔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여서 말이지요.


 나는 꽤 솔직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분을 절제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사회에 막 발을 디뎠을 무렵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미숙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표정으로 드러났던 일이 있었습니다. 스스로가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통제하려 했고 감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표정을 지워내고 그 위로 사회적인 가면을 씌우며 사람사이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싶었습니다. 화를 누르고 눈물을 말리고 표정을 연습했습니다. 특별히 궁금하지 않은 정보를 물어보며 대화를 시도하는 방법을 터득해 갔습니다. 웃기지 않은 상황에 함께 웃고 상대의 눈을 맞추며 동기화되었습니다.

‘어쩌면 사회인이기에 당연한 일이죠.’

이런 생각으로 나를 열심히 짜 맞춰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말은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는 이야기였어요.


 누군가는 솔직한 감정에 불쾌함을 표하고 어떤 이는 감춰진 표정을 보며 형식적인 사람 같다고 말합니다. 모든 이에게 맞춰 움직여줄 수 없다면 나는 나에게 조금은 솔직해질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기분과 감정을 눌러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해소되지 못한 눌린 마음이 켜켜이 쌓여서 무거워졌습니다. 정리가 필요해요. 엉켜버린 감정은 빗어내고 못쓰게 된 마음은 치워서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도록 청소가 필요해진 시점입니다. 어떤 분은 인간의 감정을 두고 ‘신이 사람에게 준 선물’이라 말했어요. 아직은 그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기분과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가만히 스스로를 들여보는 일을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사실은 꼭 필요한 시간이에요. 할 일은 많고 머릿속은 복잡할수록 잠시 나의 기분과 감정을 돌봐야 할 때임을 알려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순간을 마주한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못 본 척 지나온 감정이 처리되지 못한 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지는 않은지 마감 후의 가게처럼 하루를 정산해 보는 거죠. 간단한 글과 그림을 남기는 것도 좋고, 감정을 한 문장이나 한 단어로 기록하고 어떤 일 때문이었는지 풀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떤 하루를 보낸 나를 위해 요리나 선물로 보상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공간의 공기가 중요한 것처럼 마음에도 호흡이 잘 될 수 있도록 주기적인 환기가 필요한가 봐요.


 건강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중요하겠지요. 아직은 어떻게 해야 나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분명하게 와닿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건을 직면할 때마다 느껴지는 기분을 관찰하고 이유를 들여다보면 조금씩 더 선명해질 것입니다. 온전히 스스로를 마주하고 또렷한 마음을 알아낼 수 있도록 많은 질문을 통해서 말이에요.

 지금의 나는 어떤 기분일까요?

작가의 이전글 잘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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