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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Dec 21. 2022

잘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나는 말과 행동이 느린 사람이다. 생각이 길고 정리는 느려서 결과로 도출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을 소비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설이 움직임을 더디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방향과 확신이 생기기 전에 일단 뭐라도 해보잔 말은 못 미덥고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밀어대는 순간만큼 불편할 때가 없다. 말하자면 의심을 쌓아놓고 신중하게 결정하느라 말과 행동이 빠르게 나오기 어렵다. 충분히 검증이 되지 않은 채 누군가에게 떠밀리듯 움직이는 일은 마음이 편치 못해서 들려오는 정보에도 좀처럼 경험을 쌓을 수 없었다.

겁이 많고 의심과 경계를 멀리하기 어려우면서도 새로운 일에는 호기심이 생겨서 기웃거리며 손가락을 하나씩 넣어보았다. 여차하면 언제든지 손을 털고 도망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다리 뻗을 자리를 흘깃거렸다. 행동보다 머리로 계산을 두드리는 일이 더 빨라서 습관처럼 내뱉는 말은 의심이 가득하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입안을 맴도는 생각은 물음표가 가득하다.

-잘 모르겠는데요, 글쎄요, 어려울 것 같은데, 이게 될까요?


 어렵게 쌓아온 작은 경험이 나를 더 용감하게 만들어줄 거라 여겼지만 오히려 시작부터 망설이게 할 때가 있다. 성공의 기쁨보다 실패의 허무함이 크게 느껴져 더 이상의 아픔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이었다. 확실히 안될 것 같은 일을 하지 않으니 성공률은 점점 올라갔다. 할 수 있는 일만 찾아 했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가보지 못한 길은 꺼리며 새로운 일에 몸을 사리고 확신 없는 도전은 지레 겁을 먹는다.


무엇이 나를 머뭇거리게 하는 걸까

오랜 물음 끝에서 손끝을 서늘하게 만드는 단서를 찾은 듯하다. 두려움이었다.

그동안 시도하지 못한 일과 외면해 온 관계에 대한 내면에는 두려움이 숨어있었다. 언제부터 뿌리내렸는지 모를 이 감정은 내게 들어와서 가장 어두운 곳을 차지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할 수 있겠어?’라는 작은 속삭임으로 발을 걸고 넘어뜨려서 걸음마다 불안함을 심어둔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클수록 첫걸음을 떼기 어려워서 어설픈 연습으로 끝난 일이 많다. 나를 증명해 보이려 혼자 애쓰더라도 그 시간을 들키긴 싫어서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에 분해하며 방에 와서 울더라도 누군가와 있을 땐 별일 아니라는 듯 감추고 싶었다. 사람 간의 관계도 비슷하다. 어느새 스며들어버린 당신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굴어도 스치듯 지나간 시선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오랜 물음에 잠겼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더 나아가고 싶은 욕심을 가졌기에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 아무리 두드려봐도 건너기 전엔 모르는 일이다. ‘just do it.’, ‘그냥 해.’, ‘무엇이든 그냥 하지 마라.’… 수많은 조언과 참견 속에 살아가고 있어서 무엇이 진리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렇기에 나의 답은 내가 동그라미를 하겠다. 완벽하고 싶어서 시작도 못하는 사람이기에 일단은 완성을 목표로 한 걸음 떼는 시도가 필요하다.


아직도 입 안엔 ‘이게 될까?’하는 의문을 머금고 있지만 해보겠단 말을 먼저 뱉어보려 한다. 일단 움직이는 행동력을 가지고 싶어도 머리는 어쩔 수 없이 계산을 두드린다. 당장은 바라던 결과를 안지 못하더라도 가고 싶은 방향이라면 걸어 나간다. 한동안 앉아서 쉬더라도 다시 나아갈 것을 안다. 다른 길로 가게 된다 해도 스스로의 선택을 따르겠다. 그러니, 잘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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