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며 크고 작은 실수를 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가장 작은 사회인 가정 안에서 시작된 교육을 통해 상황에 따른 말과 행동을 배우게 된다. 엄마나 아빠, 그리고 안돼를 배운 후에는 사회를 살아가며 꼭 필요한 것을 배운다.
안녕하세요. / 감사합니다. / 잘못했습니다.
사람을 만났을 때는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하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게 되면 '감사합니다.' 말하고, 실수를 했을 때는 '잘못했습니다.' 사과하고 고쳐야 함을 배운다. 학교에서도 가르침은 심화되어 이어진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하며 어울리고 다투고 화해하고 도움을 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간다. 그러나 커가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먼저 배웠던 세 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미안해." , "쏘리."
"내가 잘못했어."
"실수였어." , "몰랐어."
많은 사람들은 사과를 하기 위해 소리를 뱉으며 가볍게 자신의 잘못을 털어낸다. 상황에 따라서 가벼운 사과를 하고 지나가도 괜찮겠지만, 분명 우리는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순간이 있다. 상대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신중하게 마음을 담아 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과는 어떻게 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배운 것은 말을 뱉는 방법을 배웠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상황에 따라 해야 하는 말과 행동을 배웠지만 그 안에 가진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특히 사과를 배울 때는 더 그랬다. 감정을 정리하고 잘못을 인정하기도 전에 분한 마음을 누르고 사과를 해야 했다. 상대도 사과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다고 용서하는 법을 강요받았다.
"미안해", "괜찮아"
짧은 말로 상황을 애써 포장하고 정리해야 했다. 사과를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준비가 되지 않고 정리된 것이 없이 상황만 마무리가 되었다. 이건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사과는 먼저 나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내가 틀렸다'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기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나이가 많은 성인들보다 어린아이들이 더 용감하기도 하다. 용기가 부족하다면 누구에게 가서라도 배워서 채워 가면 된다.
또 사과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편하자고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가 상처를 치료해주는 일이다.
나의 어떤 말과 행동이 잘못되었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것인지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을 모르겠다면 한 걸음 떨어져 '제삼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본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객관적인 상황이 보이고 나와 상대의 입장을 모두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면에서 사과는 배움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과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처에 소독을 하고 약을 발라주는 일'이다. 상처라는 것은 마치 물과 같다. 모든 것이 보일만큼 맑고 투명해 보이고, 칠흑 같은 밤처럼 어둡게 보이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득 찬 늪처럼 보인다. 그러나 직접 들어가 보기 전에는 누구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치유를 하는 것은 개인의 숙제로 남을지라도 내가 남긴 상처에 대해 미안함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상처는 잘 치료해도 흉터가 남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나에게도 흉터가 되어 기억된다. 내가 그러하듯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기에 서로 상처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사람의 양심이나 선함보다는 모든 일의 끝은 결국 바르게 돌아간다는 것을 믿는다.
모든 이유를 떠나서라도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잔인하다. 나도 당신도 각자의 삶을 위로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서로의 짐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