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새는 사라졌고, 나는 남았다

by 일상의모서리

모교에 전입했다.

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교육을 전공했으니 언젠가는 한 번쯤 모교에 근무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 문장이 이렇게 공문 한 장으로 도착할 줄은 몰랐다.

인. 사. 발. 령


업무분장을 (오라니까) 쓰러 갔다.

교무실은 생각보다 밝았다.

내 기억 속 교무실은 회색이었다.

담배연기, 철제 책상, 갱지 종이, 문제은행 문제집.

어른들의 공간은 늘 뿌연 공기 속에 있었고, 나는 그 주변을 맴도는 잡일 담당 학생이었다.

교무실 청소를 했고,

선생님 방석을 빨아왔고,

교장실을 청소하다 시뻘건 립스틱 자국을 지우다 컵을 깨뜨리고 조용히 사라진 전적도 있다.

풍금을 대신 쳤고,

채점을 대신했고,

티타임 찻잔을 닦았다.

지금 누가 나에게 교장실 커피잔을 닦으라 한다면?

던지는 대신 예산안을 검토하자고 말할 것이다.


시대는 변했고, 나도 변했다.

적어도 순종의 방식은 바뀌었다.


교정을 구경하라는 말에


“교감 선생님, 본동이랑 후동 사이에 사육장도 있고, 공작새도 있던 거 아세요?”


무심히 날 보는 눈빛에 돌아온 대답은 간결했다.

“보기보다 연식이 있네요.”


참았어야 했는데, 또 덧붙였다.

“그럼요. 오전오후반 수업도 했고, 조립식 건물에서도 수업받았어요. 여기 지하실이 예전에는 과학실이었는데.”


새 학교에서는 우아한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 주접은 거기까지였다.


어린 시절 나는 그 공작새를 노려보던 아이였다.

조류공포가 있으면서도 수컷이 날개를 활짝 펼치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봐라. 암컷도 없는데 생쇼하고 있네.

토끼똥 냄새가 나던 사육장 옆에서 풀을 뽑던 아이는 다섯 개 남은 업무와 특정 학년만 남은 업무분장희망서를 썼다.


1980년대에 학교에 들어간 나는 2026년에도 학교에 살고 있다.

풍금도, 공작새도 사라졌다.

철제 책상도, 담배연기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학생과 교사뿐이다.

그리고 그 교사 중 하나가 나다.


공작새를 노려보던 싸가지 없던 여학생은 이제 교사를 노려보는 싸갈탱이 6학년 담임을 맡을 예정이다.


괜찮다.

나도 4층 계단에 앉아 속으로 선생님 욕을 무수히 했던 전력이 있다.

이건 인과응보라기보다 고효율 순환경제다.


한때는 모교 운동장에서

후배 여러분— 하고 첫인사를 하는 장면을 꿈꿨다.

그러나 신규 시절 운동장 조회가

내 얼굴에 남긴 자외선의 흔적을 떠올리면 낭만은 멀리서만 아름답다.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어릴 때 조회하다가 쓰러지는 애 있었지?”


"체육 선생님이 쓰러진 애 업고 뛰어가면

교장이 마이크를 잡고 체력이 저래서 무슨 큰일을 하겠냐고 혼났어.”

졌다.

그는 나보다 더 야만의 시절을 통과한 흑백 졸업앨범의 주인공이다.


나는 최소한 컬러다.


공작새도 사라졌고,

풍금도 사라졌고,

회색 공기도 사라졌다.

그런데 나는 남았다.

공작새는 날개를 펼쳐야 존재를 증명했지만 나는 그냥 출근하면 된다.

이 생태계에서 가장 오래 남는 종은 결국 교사(나)다.

멸종하지 못한 존재.

어쩌면, 가장 질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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