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의 행운, 관운

by 일상의모서리

나는 ‘관운’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은 대개, 직업이 한 사람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소모했는지를 미화할 때 쓰이기 때문이다.


기대도 없이 넣은 배짱 희망내신이 덜컥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진짜 관운이 있나 보다”라고 했다.


그 말은 축하처럼 들렸지만, 내 귀에는 아, 잘도 태워 먹겠다는 소리군 정도로 번역되었다.


근무교가 지긋지긋했다.

운전은 싫어했지만, 출근길에 운전대를 잡으면 나는 늘 광기 어린 스피드레이서가 되었다. 외줄 위를 달리는 기분으로 매일을 통과하는 일에도 이제는 지쳤다.


마지막으로 교실을 치웠다.

내년 선생님을 위해 바닥이 조금이라도 더 빛나게 물걸레를 여러 번 밀었다.


그러다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카톡으로 지인들에게 확인했다.

(희망 없는 희망 내신이었기에 발표 날짜도 몰랐다.)


나 가?


나가란다.


학년 이동을 위해 싸던 짐을 학교 이동을 위해 다시 싸서 차에 실었다.

혹시 처리하지 않은 공문은 없는지도 확인했다.

집에 와서야 사물함 열쇠가 차키에 함께 딸려왔다는 걸 알았다.


이런 샤갈.


발령 학교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는 애는 있다고 했다.


아들이요.


“ㅊㅋ” 두 글자도 아껴 쓰는 그 아들놈의 학교다.


집에 오니 아들이 말한다.

자기는 좀 애매하다고.

너는 애매하냐,

나는 애달프다.


너의 모친이라는 이유로 아래층 할머니에게도 상시 애달픈 눈빛을 장착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연기할 장소가 하나 더 늘었다.


엄마, 우리 현관 밖에서는 모른 척하기로 해요.


(누가 할 소리)

끄덕끄덕.


근데 엄마, 내 친구들은 어떡해?



걔네는 집에서 엄마 파자마 입고 소파에 누워 있는 것만 봤잖아. 못 알아볼 거야.


엄마가 로블록스 아바타냐. 안경 쓰면 다른 사람 되는 줄 아나.


몰라. 그냥 말하지 마.



갑자기 아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저것이 미친 겐가.



엄마, 우리 학교 6학년 올라가는 누나 형들 진짜 말 안 듣는데…

(그래서 6만 비었다더라. 이 새끼야.)


엄마가 담임되면 그 누나 형들 싹 모가지 되는 거야?


나를 닮아 언어생활이 직관적이고 정직한 아들이다.


자기 선배들을 상상하며 고소해하는 얼굴을 보다가, 나는 문득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이 떠오르려는 걸 서둘러 훠이훠이 저어냈다.


학교가 달라져도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여러 번 겪어 알고 있다.


다만, 덜 소모되고 싶다.

그래서 새 학교에서는 공기처럼 살기로 했다.


내일 업무분장을 한다고 모이라는데, 남은 자리가 6 뿐이라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이런! 공기처럼 살기로 해놓고 의미를 찾다니.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생각도

5년 후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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