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촌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살았어. 이제 막내 장가가는 거 보고 갈 수 있겠구나.”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을 듣던 날, 오빠는 곁에 있던 셋째 아들을 붙잡고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엉엉, 아이처럼.
지난달 엄마는 먼 길을 올라 병원 앞까지 갔지만 끝내 오빠는 만나지 못했다. 대신 막내아들만 보고 돌아왔다.
며칠 뒤, 오빠는 고모에게 전했다.
“곧 건강해져서 직접 찾아뵐게요. 고모님도 꼭 건강하세요.”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오늘, 그는 작고 마른 몸으로 하늘로 갔다.
나는 오빠의 젊은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시골 농고를 갓 졸업하고 농약사에 서 있던 스무 살 청년. 부모님 도움을 받아 가게를 넓혀가던 씩씩한 어깨.
“이제 우리 가게도 제법 커졌어.”
그때 오빠가 으쓱하며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세 아들.
두 아들의 결혼을 지켜봤고, 막내의 결혼만 몇 달 앞두고 있었다.
장례식장 앞에는 정치인의 이름이 적힌 화환, 협회의 이름이 적힌 화환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건 오직 장난기 많은 오빠였다.
“야, 이리 와 봐라.”
내 머리를 쥐어박고 웃던 목소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린 나이부터 사회에 나와 쉼 없이 달려야 했던 사람.
한 번도 자신을 쉬게 하지 못했던 사람.
늘 가족을 앞세우며 살았던 사람.
그가 남기고 간 빈자리를 마주하며, 나는 이제야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본다.
이제는 부디, 편히 쉬시길.
앞으로 남은 날들이, 오빠처럼 충실한 삶의 증거로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