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함께 보낸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의 우리는, 저녁 자습 시간에 과자를 몰래 꺼내 먹으며, 마치 세상에서 둘뿐인 사람처럼 가까웠다. 신경숙의 문장을 베껴 쓰고, 공지영의 소설을 읽다 울고, 은희경의 시선을 흉내 내며, 전람회의 노래를 이어부르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차려 주던 사람, 그런 식의 소울메이트였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만난 그녀는 낯설었다.
여고 교실에서는 볼 수 없던 얼굴이었다.
좁은 캠퍼스 안에서 남학생들과 얽힌 소문에 자주 오르내리던, 그래서 조금은 다른 생을 사는 듯한 모습. 예민하고 바르던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아이 때문에 무너져 내린 남자애들의 한숨이 내 옆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무심히 주워 담았다.
모두 임용고시 준비에 바쁘던 시기, 그녀는 늘 도서관 바깥에 있었다. 그 곁엔 늘 다른 남자가 있었고. 어느 순간 나는 지쳐, 그냥 소소하게 살아가는 친구들 속에서 안정을 구했다. 책상에 앉아 시험 범위를 외우는 단조로운 일상이 그때는 오히려 내게 편안함이었다.
어떤 사람이 있다. 곁에 있는 사람의 촉수를 곤두서게 만들고, 자꾸만 평범을 흩뜨려놓는 사람. 그 옆에 서면 괜히 내가 더 불안해지고, 내 안의 결이 뒤틀린다.
상연의 기구한 삶이 은중의 평범함을 해치며 그 위에 서야 할 이유는 없다.
삶은 누군가의 고단함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