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을 했지만 치료는 진행 중이었으므로 모든 집안일은 아이들과 남편이 하게 되었다. 남편이나 딸아이가 재료를 씻고 다듬으면 나는 어떤 양념을 얼마큼 넣어야 할지를 알려 주었다. 서툴고 어색했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여느 날처럼 오늘도 병원에 왔다. 오늘은 다행히도 딸아이와 함께였다. 병원진료는 어깨 물리치료를 받고 상처부위를 소독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소독이 진행되는 곳은 진료실은 아니고 준비실 같은 곳에서 진행이 되는데 나는 그곳에서 또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소독을 담당하는 간호사들을 매번 같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날
담당 간호사는 내가 들어가자 얼른 문부터 닫았다
아무래도 문을 열고 하기에는 그럴 것 같아서라며 말 끝을 흐렸다.
몇 번이나 소독을 받으면서 문 따위에 신경을 써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간호사분은 날 배려해 주고 있었다.
"많이 아프셨겠네요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얼른 해 치워야 할 업무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혹여라도 상처 부위가 남들 눈에 띄지 않을까 꼼꼼하고 세심하게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고 작은 미소다.
사고 이후 딸아이는 날 아이 대하듯 했다.
김수미 씨 그러셨어요 이러셨어요 하며 엄마가 아이를 어르듯 우쭈쭈 해 주었는데 처음엔 어색하고 이상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사실은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에도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부모님의 방식은 묵묵히 믿고 지켜보는 쪽이라 우쭈쭈 해 주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한 것인지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이 바람이 아니라 햇빛인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건 또한 따뜻한 말 한마디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가 즐거우니 이만하면 천 냥에 비길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