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이제 막 들려고 하는데 옆 침상에 환자가 들어왔다. 손가락을 다친 것 같았고 나이는 내 또래쯤으로 보였다.
얼마나 놀라고 아팠는지 얼굴에 혈색이라곤 없어 보였다. 아는 게 무섭다고 먼저 겪어보니 그 아픔과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함께 온 사람은 남편인 듯 보였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거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사고 당시의 남편 모습이 떠올랐다.
밤은 깊었지만 잠은 이미 저만치 달아나버렸고 옆 침상 환자는 마취가 깨기 시작하는지 통증을 호소했다. 이럴 땐 차라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밤이 너무 깊어 병실 밖을 나갈 수도 없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밝았다. 아직 옆에 환자는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고 어제는 보지 못한 여자분이 침상을 지키고 있었다. 엄마인가 아님 이모 정체를 가늠하기엔 애매해 보였다.
아침을 먹고 담당선생님의 회진이 있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남편이랑 딸아이가 왔다.
남편은 수술은 괜찮았냐 손은 아프지 않냐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고 수술도 잘 끝났고 손도 아프지는 않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길 했다.
점심시간이 지났을 때쯤 옆 침상 환자에게 손님이 찾아왔는데 아무래도 직장 상사인 듯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환자분이 그 직장 상사를 향해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며 손까지 싹싹 비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 환자의 사연은 이러했다.
그 아주머니는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믹서기로 마늘을 다져 판매하는 일을 하고 계셨는데 믹서기 세척과정에서 전원 코드를 뽑지 않고 세척을 하다 이런 불상사를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인의 잘못으로 회사에 피해를 주게 되었으니 몸 둘 바를 몰라하던 그분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직장상사는 괜찮다고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며 빠른 쾌유를 빈다는 말은 전하곤 자리를 떠났다.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뉴스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다.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는 말. 막을 수 있었는데 왜 막으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못 한 걸까.
어쩔 수 없는 사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 아주머니의 사고 같은 경우는 부주의다. 깜빡하고 전원코드를 뽑지 못한 것인지 아님 코드 안 뺀다고 큰일이야 있겠어라는 안일함인지 나는 알지 못했고 따져 물어볼 이유도 없었다.
정확히 손가락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회복하는데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했다. 내가 겪어 본 바에 의하면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잘못이 나로 인한 거라서 탓할 사람이 나 아닌 그 누구도 없을 때
좌절감과 무기력함을 느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치안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 그 어떤 일도 완전한 건 없어서 사건.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의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