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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생명 Aug 11. 2024

잘 몰라서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강제 휴직을 하게 되고 코로나까지 겹치게 되면서 두문불출이 일상이 되어 버린 어느 날.

 

 남편은 휴무였고 딸은 휴학 중이었으며 아들은 대학에 입학했으나 비대면 수업이라 온 가족이 집에 머무르는 평화로운 날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조금씩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아니, 그건 불안이라기보다는 두려움이었다.

 가족모두가 둘러앉은 평화로운 이 시간에 내 마음은 베란다로 향하고 있었다. 죽어야겠다는 내 의지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강한 힘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가 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

 지금은 가족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나 혼자 있는 시간에 이런  상황이 반복될까 봐 무섭고 두려웠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정신과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기라 이 또한 쉽지 않았고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상담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메일을 통해 나의 처지와 상담요청을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이 왔고 그 메일은 통화로 연결되었다. 상담사님은 내 사연이 너무 힘들고 안타깝다는 공감의 말을 먼저 해 주셨다. 그 공감의 말로 이미 눈가엔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사고의 경위, 수술과정, 그동안의 마음고생에 대해 얘기를 했다.


 한참을 얘길 하고 웃다가 너무 답답한데 왜 답답한지를 몰라서 너무 힘들다고 얘길 했더니 나의 과거에 관해 물으셨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은 의료사고로 갑작스럽게 엄마를 떠나보내게 된 것이다.  누군가의 사별이 준비한다고 해서 익숙 해질 리 없겠지만 갑작스러운 엄마와의 이별을 가족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아빠는 넋을 놓고 계시고 오빠는 말을 잘하지 못했으며 세 동생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해서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었다. 조문객을 받고 가족들 추스르고 그렇게 3일간의 장례식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엄마의 제삿날이 음력 12월 25일이라 장례식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 명절 제사상을 차렸다.

퇴원해서 같이 제사 음식준비하자던 엄마만 없는 슬픈 명절이었다.


 설 명절 다음날 서점으로 출근을  했다. 다들 좀 더 쉬지 왜 이리 일찍 출근했냐며 걱정을 해 주셨다.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내 삶의 버팀목이었던 엄마를 떠나보냈는데 오랫동안 슬픔에 젖어 있는 건 어리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부모와의 이별은 겪는 일이고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사람도 많지 않은가.


 그때부터였다.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은 게.

다들 힘들어도 꿋꿋이 살아가는데 나라고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그럴수록 일에 매달렸다.


 내 얘기를 들은 상담사님은 그게 이유라고 하셨다. 그 큰 일을 겪고도 힘들어할 시간을 주지 않아 지금 그 힘든 마음들이 폭발해 버린 거라고.

 힘들면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원망도 하고 그 힘듦의 시간을 충분히 앓지 못해서 이제야 앓는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울음이 터져 버렸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소리 내어 울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무엇 때문에 힘들어도 참고 살았는지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나는 왜 이 모양인지.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울다 지쳐서 통화를 마쳤다.


일보다 더 중요한 게 휴식이다. 우리 삶 또한 휴식이 중요하다. 100년을 살아야 하는 긴 삶인데 아프면 쉬어가고 힘든 일이 있으면 쉬어가고 그렇게 쉬엄쉬엄 가야 100년 인생을 헤쳐갈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상담 해 주셨던 상담사님이랑은 아직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고 그 계기로 지금은 상담사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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