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원 Jan 27. 2022

EP1. 냅킨 던지는 아이

우리, 애초에 날고 싶어 난 것은 아니지만은.

1일차, 

 

바다를 오래 바라보다가 여행기를 써보기로 한다. 여기는 21년의 겨울(정확히는 빼빼로데이 다음날이다), 선인장을 가득 심어 놓은 바다 바로 앞 루프탑 카페다. 커피 한잔과 크로플을 시켜놓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 보려고 하다가 그 생각조차 아무 생각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서운하던 차였다. 아이 하나가 카페에 들어와 냅다 냅킨을 날리기 시작했다. 재생종이로 만들어 진 누런 냅킨. 카페 로고나 겨우 그려진 종이가 하늘을 활강하다가 바다가 앉았다. 바다새 같이 오래 그리고 멋있게. 


첫번째 에피소드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 애초에 날고 싶어 난 것은 아니지만은. 

(여행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기대지 마시오, 그러다 추락합니다.) 


사람 눈과 가장 비슷하게 찍힌다는 35mm 렌즈와 카메라를 들고 영종도로 왔다. 무려 자쿠지 스위트라는 멋진 이름을 붙인 방을 5일이나 빌려서. 휴가이니만큼 일 생각은 하지 말자. 하며 짐을 챙긴다고 챙겼는데 짐 가방에는 못다 본 책과 혹시 모를 작업을 위한 아이패드와 시나리 오를 챙겨왔다. 책 제목마저 투쟁같다. ‘여자에게는 야망이 필요하다‘는 책과, ‘사랑한다는 이 유로 상처받는 관계를 유지하지 말자‘는 요지의 책이었는데, 야망도 넘치고 관계에 있어서 늘 피해자만은 아니었을 내가 이런 책을 휴가에 마저 또한번 챙긴 이유를 생각해 본다. 무거운 갑옷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내 밥벌이에 이런 호화로운 휴가를 감당하면서도 삶과 목표 그리고 멘탈까지 충실히 지켜내는 여성 예술인이고 싶었나보다. 참 재미없는 사람으로 컸구나 싶던 찰나였다. 술이나 잔뜩 마시고 자고 싶었는데 배가 고팠다. 배달을 시키려다가 바다까지 왔는데 싶어 길을 나섰다. 호텔 앞, 커플들을 위해 전구를 멋지게 매달아 놓은 산책로를 혼자 걸었다. 

밤 열두시. 


문제는 바닷바람이 상당히 추웠다는 것이다. 갑자기 온 한파에 겨우 두벌 챙긴 옷은 턱없이 부족했고, 식당에서는 바가지를 맞았다. 우습게도 이만하면 다행인데, 겨우 잠이 들어서도 엄 청난 악몽을 꿨다. 웃는 얼굴로 다가온 불행이 나를 납치해 난도질하는 꿈. 와, 아직도 그 남자 얼굴이 생각이 날 정도로 무서운 꿈이었다. 아무도 내가 휴가를 떠난 줄은 몰랐으므로 평 일에 으레 걸려오는 일 전화에 눈을 떴고, 


“감독님, 근데 지금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목소리가 안 좋은데...“ 


상대가 바로 눈치 챌 만큼 별로 좋은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 틀림없다. 잠시 테라스에 몸을 기대고, 분명 쉬려고 떠나왔는데, 여전히 날 묶어두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카메라나 챙겨 방을 나왔다. 스무 살, 중고로 60만원에 산 이 카메라는 벌써 9년째 교환학생으로 떠났던 유럽 여기저기와, 나의 가족사진 버전 원투쓰리와, 나와 내 동기들의 영화 테스트샷과, 이렇게 휴가 때까지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면서도 고장한번 나지 않는다. 애초에 중고라서 몇살인지도 모르는 카메라와, 영화감독치고는 너무 어린 것 같다며 미팅마다 매번 “그래서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하는 말을 듣는 나. 


(꼭 나같은 카페를 골랐다. 바다와 겨울과 선인장이라니.)

상대의 무해한 물음에도 날을 세우는 고슴도치 같은 나와, 케이징 없이 칼같은 바닷바람에도 고장한번 나지 않는 중고 카메라. 우리가 담은 이번 여행의 첫번째 풍경은 냅킨의 활강이다. 


“너 자꾸 그러면 나쁜 사람이야“ 


바다에 냅킨을 던지고 친구랑 싸우고, 테라스를 뛰어다니고 더러운 자갈을 만지고 마스크를 답답해하던 아이였다. 갓 생일을 맞았는지 풍선을 잔뜩 들고, 누나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와 싸우면서도 또 신나 손을 잡고 볼이 빨개져 옥상을 뛰어다니는. 아이의 부모님은 연신 눈치를 보지만, 뭐 원래 아이들이 그런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아이일때는 언제 납득할 만한 사고만 쳤던 것처럼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젓는 어른들이 웃길 일이다. 이렇게 만지고 떼써가며 세상을 배웠을 테면서. 

그래서 인사나 했다. “안녕!” 아이는 히- 웃으며 냅킨을 더 날리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 부모 님은 흙빛이 되어서 아이를 말리지도 혼내지도 않으며 그냥 인사나 하는 나를 더 경계하는 것 같다. 뭐 상관없다. 내가 보고 있던 풍경은 따로 있었으므로. 


새가 나는 모습을 찍어본 적이 있는가? 날개를 쭉 펴고 날아가는 모습도, 날개가 마치 없다는 듯 몸을 웅크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듯 활강하는 모습도 환상적이다. 우습게도 냅킨이 날아가는 모습이 그랬다면 여러분은 믿을까? 네모진 얇고 작은 종이가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접고 펴가며 세상을 휘젓는다. 멋진 광경이다. 애초에 이렇게 생긴 것은 아니었고, 기성품으로 태어나 남의 무엇인가를 닦고 버려질 냅킨이 하늘을 잠시 날다 바다에 안착했다. 빠르게 젖어 가라앉았고, 더는 보이지 않았으나 뭉클했다. 마음에는 오래 남을 광경이었다. 

“이러면 나쁜 사람이라고 했지 엄마가“ 


아이가 혼이 나는 탓에 그 모습을 더 볼 수 없어서 아쉬울 만큼. 어떤 만화인가 책에서 우리 세상에 신이 있다면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세상의 옳고 그른것을 보고 싶어서 만드는 광경이 아니라, 그저 호기심으로 만들어내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쁜 사람이 될까봐 내 손으로는 냅킨을 날릴 수 없는 나의 어리석음을 아쉬워하면서도. 내 늙은 카메라는 날아가는 냅킨을 찍어내기에는 너무 오래되었고, 그 대신에 의자에 묶여 날아가지 못한 냅킨을 담아보자고 나를 재촉한다. 


아, 늙어간다는 것은. 





작가의 이전글 늙은 35mm 카메라와 어린 영화감독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