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영화 안 보신 분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GV 1편,
K대_OO닮음_93년생.avi
(로그라인: 26살 혜원은 자신의 섹스 동영상이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전 남자 친구(지호)를 고소한다.
살던 곳을 떠나 새 알바 자리를 구한다.)
이 영화에서 다 지우고 딱 한 줄만을 남기라면,
이 대사를 남기겠다.
혜원 "리벤지 포르노라고 하더라.
네가 푼 거.
하나만 물을게.
너 나한테 대체 뭘 복수하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정작 편집본에서는 짤렸다. 저 대사 없이도 충분히 전달되었다는 편집자의 말을 믿겠다.
아쉬워서 포스터에서 다시 살렸다)
여러분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 서로에게 가장 맛있는 것을 떠먹여 주는 것? 같이 있으면 설레고, 오래 있으면 편하고, 종종 함께 아침을 맞이 하고 싶은 것? 최근에 도저히 모르겠어서 먼저 결혼한 엄마한테 물어보니, 책임이라고 했다. 아직 동의하기 어려울 건데, 커보면 알 거라고 했다. (더 커야 한다니 끔찍하다)
Q, 이혼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A, 결혼이다.
(미혼인 내가 이런 농담해서 죄송하다 결혼하고 나서는 배우자에게 예의가 아닐 테니 안 하겠다)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다.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았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을 노리고 썼다. 동기한테 이렇게 말했더니 나홍진 감독님도 GV에서 황해가 로맨스 영화라고 말했다고 하더라. 낼 때는 역시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아서 비정성시와 절대 악몽으로 냈다. 그리고 떨어졌다 마음이 아프다)
어렸을 때부터 늘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사랑이 늘 아름답다고만 생각하는지. 내가 사랑을 화두로 삼기 시작한 이래로 나를 가장 상처 준 사람들은 늘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가족과 전 애인들, 친구들. 한때는 내게 마음을 주었고, 내가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
아마 내게 가장 상처 받은 이들도 그들일 것이다.
불완전한 우리는 종종 사랑을 사랑으로 되갚는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되갚는다.
사랑도 복수도, 근본적으로 우리가 타인이라는 것을 잊어서 벌어지는 문제다.
내 결핍을 근거로 당신을 오해하고 반하고, 당신만은 나를 이해할 거라 믿으며 마음을 주다가 당신이 나를 몰라준다는 이유로 떠나는 것. 나는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그저 오해. 복수의 본질도 같다. 내 맘을 다 알 줄 알았는데, 몰라주니 미워서 너도 한번 아파봐라 하는 마음. 우리는 그럴 때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가장 잘 아는 방식으로 상처 입힌다.
ex)
“엄마 나를 왜 낳았어?”
“넌 날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잖아. 내 몸만 사랑했지.”
말하는 순간 나도 안다.
왜 낳았는지, 정말 나를 사랑했었는지. 그때 당신의 마음이야 타인인 내가 정확히 다 알 리가 없지만, 당신에게 이 말이 제일 아프리라는 것을. 알면서 하는 말이다.
미워서. 나 아프니 너도 한번 아파보라고.
그런데 당신이 근래에 본 영화들은 어떠했는가?
<뷰티 인사이드>에서 김주혁은 헤어지는 한효주에게
“감기 걸리겠다. 그 약도 그만 먹고.”하며 헤어지고
하늘에는 눈이 내린다.
이런 헤어짐이 없을 것이라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다고 상처가 옅어지던가?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좋은 사람인척 하고 있네.
야. (욕설) 네가 진짜 내 우울증이 걱정되면
이 밤에 이렇게 헤어지자고 하질 말아야지.
약까지 안 먹으면 오늘 어떻게 자라고.
앞으로 이 골목 지나다닐 때마다 네 욕할 거야.”
생각했던 거 같다.
현실의 사랑은 지나간 자리마다 폐허로 가득한데, 미디어 속의 사랑은 늘 아름답기만 하다.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저 속의 사랑은 늘 찬란한데, 왜 내 사랑은 이다지도 비릿할까. 내가 모자란 인간이라 그런가. 아닌데, 친구들과 술 마시고 하는 연애담의 90%는 이렇게나 잔인하고 비겁한 잔해뿐인데. 헤어지자니 죽겠다는 연인(남녀 불문으로 많더라, 진짜 제발 그러지 마라), 너 나 아니면 이렇게 사랑해줄 사람 없다는 식의 악담. 나랑 사귈 때 쟤가 어땠는데 하는 식의 뒷얘기와 소문까지.
나를 가장 잘 알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지 싶은 것들.
네게 보는 눈이 없어서 그래. 똥 밟았다고 생각해.
이렇게 치부하던 것들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었다.
당신의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라,
어쩌면 이 잔인함 자체가 사랑의 본질과 같을지 모른다고.
그러니 우리는 똑바로 보고 지지 않아야 한다고.
이를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소재가 바로 리벤지 포르노였다. 디지털 성범죄라고 정정하겠다.
다만 이 단어를 쓴 이유는 ‘리벤지’와 ‘포르노’라는 단어의 충돌을 말하고자 함이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의 섹스를,
타인의 성행위로 박제시킨 것.
= 리벤지 포르노(디지털 성범죄)
왜 우리는 이것을 유포하는 리벤지를 하며,
이를 어떻게 포르노로 소비하는가.
Q. 지호(혜원의 전 남자 친구 극 중 이름)는
대체 왜 그랬을까요?
A.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실제로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그리고 대답할 때마다 어렵다. 내가 창조한 극 중 인물이라고는 하나 타인인 것은 동일하다. 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악의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 다만 내가 추측하기로는 지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범죄 맞다. 범죄자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헤어지고 나서 아마 많이 미웠을 것이다. 여주인공이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누구나 관심이 떠날 때, 무관심이 도착하기 전에 미움이 먼저 오지 않는가. 그냥 그 미움에 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꼭 악인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랑했을 때에는 한없이 아름다웠을 달뜬 얼굴이겠지만, 마음이 다한 후에는 그저 타인의 찡그린 얼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 연인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이었을 테니. 타인에게도 그것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제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한때는 내가 가졌었던 물건처럼 내가 마음대로 상처 낼 수 있는 것이라 여기며.
어린아이들이 꼭 제가 좋아하던 물건을 달라고 하면
남들이 못쓰게 스크래치를 낸 후에야 던져주는 것처럼.
내게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겠다면, 상처라도 가져가라는 심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당신이 사랑했던 그 사람은 당신과 사랑하던 그 순간에도, 헤어진 순간에도 그저 타인일 뿐이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그저 오해일 뿐. 변한 것은 없다. 당신은 가진 적이 없고, 상대는 내준 적이 없다. 상처를 입힐 자격이 된다는 것조차 착각일 뿐이다.
한때 내 세계에 들렀다가 간다는 사람한테
빈손으로 가지 말고 뺨 한대 맞고 가라 하는 꼴이다.
뭐 더 챙겨줄 거 아니면, 되도록 그러지 말자.
이 영화를 통해 그동안은 피해자에게 ‘너의 사람 보는 눈 탓’이라고 하며 돌려온 이 상흔의 과오를 똑바로 보여주고 싶었다. 여러분의 ‘눈’ 탓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 중에 이렇게 잔인한 것이 있다. 스스로를 탓하지 말라. 애초에 타인이라서 사랑에 빠진 주제에, 이를 잊고 여러분을 대상으로 소비하고자 하는 이 타인들을 탓하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는 상처 받은 당신이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의도했건 그렇지 못하건).
이 영화의 결말이 그렇게 끝나는 이유는 이 까닭이다.
칼날이 가닿아야 할 곳은 내가 아니라는 것.
(스포가 될까 봐, 정확히 못썼다. 감독이 자기 영화 스포하면 좀 그러니까. 배급 계약 끝나면 옥수수나 유튜브에 올리겠다. 다들 편하게 보시라)
그래서 제목을 <K대_OO닮음_93년생.avi>로 지었다. 한때 커뮤니티와 오프라인에서 밈으로 소비하던 그 몰카 농담을 가져온 거 맞다.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 퍼트린 영상으로 인해, 소속과 생김새, 나이 등이 남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이 주인공에 대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A, 아무것도.
어쩌면 영화의 본질 자체도 몰카일지 모른다. 관심 가는 대상의 삶을 몰래 지켜보는 것. 이 영화가 당신에게 그런 찝찝함과 물음표를 주었다면 나는 기쁠 것 같다. (찝찝함은 죄송하다. 다음번 영화는 가벼운 거 찍어보겠다)
다음 브런치에서는,
영화 본 사람들이 읽으면 더 재밌는 GV2편을 써보겠다.
(캐스팅 비하인드나, 지금 그 배우들의 차기작 근황, 당시의 준비 과정 등)
영화제 10분 질의응답은, 참 짧은 시간이라 매번 물어보시는 거 대답하고 나면 끝나서 아쉽다.
다른 93년생들의 피드백이 궁금했는데..
P.S 그래서 이 영화가 감독 본인 이야기 맞냐는 물음에 대답을 드리자면,
내 이야기가 맞다.
93년생에, K(-arts)대를 다니는 내가
생각한 사랑에 대한 단상을 담았다.
사회 초년생이기엔 어리고,
학생으로 남기엔 너무 많다는 나이의 혜원.
남들은 손예진, 김태희 닮았다 하면
즐거워할 농담에 흠칫 놀라는 혜원.
이사를 가고, 흔적을 지워도
내 친구가 너 여기서 봤대.
한 마디에 쉽게 찾을 수 있는 혜원.
흔하고 좋은 이름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이런데 쓰게 해주신 점도 감사하다.
"혹시 진짜 영상이 있냐,
그 영상 어디서 보냐"고 물은 딱 한 분,
농담인 거 안다.
그럴까봐 주인공 이름을 혜원이 한거다.
이 자리를 빌려,
사석에서라도 우리 배우한테는 농담이라도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도 사람이라 상처받는다.
긴 글 읽어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린다.
이 영화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야
좋은 헤어짐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실 잘 모르겠다.
나한테 좋은 헤어짐이 상대에게는
아픈 헤어짐일 수 있으니.
내가 내린 결론은, 스무몇 해를 멀리 따로 걷다가 우연히 만나 좋았고 반가웠던 마음만을 가져가는 것. 빌린 책을 반납하듯, 무던하게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것. 아쉬우면 당신이 길을 돌아 다시 내게 걸어오고, 내가 아쉬우면 되돌아 걷고. 그도 아니면 슬픔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른 건널목에서 또 다른 반가운 이를 만나며.
26살의 혜원이, 잊힐만하면 또 보네. 오늘도 반가웠다.
기승전, 디지털 성범죄 아웃.
예고편 궁금하신 분들은 언제든 보러 와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