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초록은 통과! 이제 내년에는 학생이 아니겠구나. 아 참.
길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긴장이 풀려서 초콜렛 왕창 든 빵을 시켜서 카페에 나와서 학술대회 준비 겸 타겟 저널지의 최신호 논문을 딱 4개 사서(두개는 유료 구독이었다. 전문성에는 돈이 든다. 껄껄. 그치만 다 보고나니 아주 시의적절했다. 사보길 잘함) 열심히 읽고 있었다.
초록이 통과되었다.
이제 본심만 남은 셈이다. ‘와 한 학기동안 잘 고쳐서 내면, 와 드디어 내년 겨울쯤에는 이제 진짜 학생이 아니겠구나.’ 하는 홀가분함으로 나가서 그냥 앉아있었다.
졸업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제법 기분이 홀가분하다.
다음 주에는 악동뮤지션의 새 앨범도 나온다고 하고, 4월은 무엇보다 내 생일이 있는 달이다. 20대 때의 나는 사람도 좋아하고 노는것도 좋아하고 혼자 있는걸 싫어해서. 생일을 한달내내 하는 바람에 가족들과, 친구들이 “정혜원은 4월에 태양절을 하네...” 라고 했는데 올해는 철이 들어서 4월 생일에는 무려 1박 2일 컨퍼런스에 있을 예정이다. 그걸 준비하는 주차가 이번 주차부터니까 딱 4주. 영어로 진행되는 컨퍼런스고 중국 미디어를 좀 봐야 해서 오늘부터 이제 열심히 봐야지 싶다. 작년부터 해외 저널지 투고를 해보고 싶어서 초고를 써뒀는데 이제야 할 에너지가 좀 채워졌달까... (사실 초록 통과가 더 급했다)
어제는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홀수해 생이라서 작년에 했어야 하는데, 정신도 없었고 아파봐야 대안도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잊고 있었다. 올해는 초록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음, 건강검진을 해야겠어.’ 하고 공단에 전화해서 “이번년도로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했다. 뭐, 이건 나 외에도 직장인, 자영업자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현생 사느라 정신이 없을 때는 아픈 것이 사치같다. 쉴때는 이제 환자가 되고... 번 돈 몸 챙기느라 다 쓰고 다시 도돌이표.
<미지의 서울>을 보고 있다고 했는데, 그 작품에는 아픈 장면이 참 많다. 작년이었다면 아마 마음이 아파서 중도 이탈했을 것 같다. 원래 이름이 ‘미지’가 되려고 했던 첫째가 미숙아로 나니까 첫째에게 더 미래가 필요할 것 같아서 미래라는 이름을 줬다는 대사부터, ‘미지’인 둘째가 육상부를 그만두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 그리고 미래가 잘 들어간 공단에서 교통사고든 옥상에서 떨어지면 죽지는 않고 병가는 나오니까 자기가 계획을 다 세웠다고 막 주절거리는 부분. 그리고 회사 사람들이 카페로 들어오자 핸드폰도 놓고 막 도망치는 그 장면까지.
미지의 눈에는 미래의 삶이 모자랄 것이 없는데, 미래는 계획이 있다면서 그 좋은 머리로 죽을 계획을 세우는 그 부분이 정말 싫었다. 야, 직장인들 다 그런 생각해. 이렇게 이어지던데. 아 대사를 작가님이 너무 잘 쓰셔서 미래 엉덩이를 한번 쎄게! 걷어차 주고 싶었다.
이런 헛똑똑이!
날씨가 따뜻하다. ‘초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지독한지 모르고 봄은 색색으로 젖어있다. 화사함이 겨울과는 다른 세상 같다. 내 옷장에는 정말 갖가지의 색 셔츠와 가디건이 있는데(내가 쨍하고 화려한 색을 좋아한다 마젠타, 코발트 블루, 레드- 이런 셔츠 색깔이 폴로에는 나오지! 나는 옥스포드지로 만든 셔츠를 유독 좋아한다) 출근하는 날의 나는 주로 세미정장을 입고 다니니까. 굳이 화려한 색 조합을 피하고 피해서 옷을 검정-네이비-화이트-블루-오트밀로 맞춰입는데 지난주에는 빨간 가디건을 입었다. 내 존재 예쁜 빨강색 입고 힘나라고.
나는 내가 예쁠때 힘이 잘 난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개강을 하고 나니 얼굴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좀 들었다. 나도 좀 그런것 같다. 올해는 수업을 하나 더 맡게 되었는데 둘째주 수업까지 딱 하고 ‘아 오케 아무래도 강의 교안을 새로 다 다시 만들어야겠다.’ 하고 원래 짜둔 PPT를 싹 엎고 작품을 다시 봤다. (첫 주에 학생들이 졸려했다...! 당연히 방학에 논문 몰아 쓴다고 에너지 떨어진 나의 잘못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학기 초였으니까!)
2학년과 3학년에게 필요한 것이 다르지!
레퍼런스 보기와 창작은 완전 다르지!
하면서 각각 수업 목표를 다시 정하고 작품을 봤는데, 교안을 한참 수정하다가 그 생각이 들었다. 아, 확실히 강의는 하면 에너지를 받고 있구나. 참 고맙네. 혼자 방안에 틀혀박혀있었으면 아마 작품도 보던 것들만 봤을텐데. 그러다 보니 초록 심사하는 동안 내 작품, 남의 작품 보고, 애들 보고 강의 하고 돌아다니고 하는 것들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기뻤다.
- 3학년 수업이니까, 이 친구들은 내년에 4학년이 되겠지? 지금 미디어 시장이 아주 불경기인데, 어떻게 하면 이 친구들이 자기랑 잘 맞는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을까? 뭐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나?
- 2학년 수업이니까, 이 친구들은 성취보다는 창작 자체를 경험해보는게 중요하겠지? 그럼 뭐가 가장 기본이지? 하면서 작법 책도 다시 보고.
그러는 동안 시간이 금세 흘렀다.
초록 심사 마치고는 결과를 기다리는 한 일주일 좀 넘게 열흘? 동안 내가 썼던 것들을 다시 읽어봤다.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었었나. 어떤 감독이 되려고?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아주 천천히 나를 옮겨 심는 일이다.
전업 작가, 전업 감독, 스타트업 대표, 박사 수료 연구생, 시간 강사 전부 나는 내가 맡은 일들을 사랑했다. 작품 기획안, 마케팅, 시나리오 쓰는 것. 공부하는 것도 전부 좋아하고 세상에 태어나 한 만큼 결과가 나는 것은 의외로 일 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몇 가지의 한계도 마주했다.
아, 내가 의외로 남의 니즈에 맞춰서 나의 작품을 잘 마무리 해주거나 빨리 빨리 목표를 바꾸지 못하는구나? 그럼 ‘완전 작가’로 사는것 어려울 수 있다. ‘각색 &윤색’도 어려울 수 있다. 매체에 빨리 익숙해지지 않네.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작업하는게 작가의 원칙인데 난 이게 좀 안 맞는 것 같은데? (혼자 일하면 자꾸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니까 기분도 다운되고 다른 사람 아이디어를 들을때가 확실히 퀄리티가 낫다. 그렇다고 내가 남의 시나리오를 막 받아서 연출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남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성과가 안나오니까 화도 나고. 그런데 나의 의지로는 연차 혹은 시간이 쌓이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 뭐 이런거.
20대와 30대 초반까지의 나는 이런 한계들을 마주하면 늘 학교를 가거나 공부를 했다. 레퍼런스를 외우면, 남들처럼 필사하고 씬 리스트를 짜보면. 장르와 그 장르 잘한다는 그 감독의 그 포폴을 다 외우면, 난 머리는 좋으니까 해결 방법이 있겠지!
난 머리는 좋으니까.
그러나 이제야 이 생각이 <미지의 서울>처럼 헛똑똑이 같은 거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부모님은 아주 오래, 우리 딸이 느려도 순리대로 살게 해주세요. 남과 어울려서 웃고 즐기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해서 나에게 ‘다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던데. 차 ‘다’ 자에 기쁠 ‘희’다. (개명했다)
내가 가장 즐겁게 작업했던 것들이 어떤 거더라?
의외로 굉장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2014-2025년까지 내가 작품으로 기획안과 예산서를 써서 대중에게 “이건 제 작품입니다” 하고 선보인 이래로 구성이 좋아서 사람들이 좋아한 작품은 썩 없었다는 생각도 좀 하고.
그럼 뭐 때문에 그렇게 내 작품을 좋아해줬을까?
초록 쓰는 동안 사실 그 고민을 오래했다. 그 마음으로 돌아가려면 어떤게 필요할까? 나는 작년에 건강(그리고 소정의 월급: 주거대출 받다가 보니까 그 생각이 그냥 들었다, 사업소득 말고 '월급')이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30대처럼 출퇴근이 있고, 정해진 일과와 정해진 양의 일을 해내서 정해진 돈을 받고, 저축하고 대출받고 삶과 미래를 계획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휴가나 저녁을 보내는 일상을 내가 살아본 적이 없구나?
그래서 그들이 좋아하는 걸 잘 모르나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난 그거 누릴 수 있지? 하고 졸업해야지! 졸업!!! 하고 졸업 자금을 모았다. (아... 대학원 돈 많이 든다... 물론 다 썼다 아 내가 생각한것 보다 좀 더_최종_최종_최종, 길어진 대학원 생활.)
아무래도 30대의 건강에는 돈과 경제적 안정이 포함이라, 오! 월급을 받으려면 강사 말고 교원이 되어야겠군. 교원이 되어서도 사업이나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포지션이 있나? 나의 활동과 학교의 니즈가 윈윈인 케이스가 있나? 레퍼런스든 포지션이든? 뭐 그런 고민(감히! 그렇지만 내 인생도 소듕한걸)했다.
내가 아주 자주 하는 우스개소리로 무용 그만둔 사람들은 왜, 무용 공연 근처도 안간다잖아. 하는 말을 할때가 있는데, 작년에는 정말 영화고 드라마고 남의 것 나의 것 구분 없이 보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한 산을 넘었나보다. <미지의 서울>은 재미있었다. 내 삶의 형태는 미래였던 순간도, 미지였던 순간도 있었는데. 지난달에는 진짜 처음으로 최종면접을 봤다. 한참 시범 강의를 하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떨어졌지만.
아, 이제 다시 작품을 볼 수 있겠다.
“재미있게!”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진짜 바로 영화관을 갔다. 당시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로 가장 유명하신 장항준 감독님 <왕과 사는 남자> 봤는데 깔깔 웃고 엉엉 울다가 나왔다. 천만 넘었다고 하길래, 진심으로 기분도 좋았다. 그렇지 이게 영화의 본질이지. 공부하려고 보는게 아니라, 나는 약간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보다는 셰퍼드 재질이라... 이 브런치에는 나의 눈물 자국만이 가득한데.
뭐 봄이니까.
지난주엔 봉준호 감독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봤다. 영제가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더라고. 하하하! 이번 학기에는 이제 남은 강의하고, 학위 논문 고치고, 앞에 투고 해둔 학술 논문을 고칠 예정이다.
워크샵 강좌를 하나 오픈했다. 홍보를 목적으로 오늘 브런치를 적은 건 아니고, 내 다짐을 적어두는 것이다. ‘건강하고 즐거운 데뷔 준비’라는 건 세상에 없는 말 같지만, 뭐! 나의 강사로서의 추구미 같은 거라고 치자. 사실 서울문화재단, 서영위, 영진위, 창의인재, 씬원 사기업까지 다 받아봐서. 내 자료로 강의 교안을 짰다. 시나리오 데뷔를 꿈꾼다면 열심히 나와 16주를 보내보자고-!
나는 다음 작품으로는 <플란다스의 개>나 <K대>의 혜원 처럼 무력한거 말고 으라차차 액션을 써봐야지. 나의 빨강은 희망이니까.
https://youtu.be/5j-kG_v9MIU?si=W1R1L8Cs4y-7T5OC
P.S 미지의 서울에서도 딸기 길러서 웃겼다.
딸기는 희망의 상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