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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코 Jan 27. 2020

13. 길을 잃다!

과테말라/파나하첼

치치카스테낭고를 구경하는 날, 앞으로 닥칠 시련을 깨닫지 못한 채 난 신나는 마음으로 셔틀을 탔다.


치치카스테낭고는 목요일, 일요일에 중미 최대의 전통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사람도 많고 소매치기도 있다고 하고 볼 것도 많은 말 그대로 정말 모든 게 넓고 많은 곳이다. 파나하첼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 여행사들마다 셔틀이 있다. 굴곡진 도로를 지나 치치카스테낭고에 도착! 1시 40분까지 내린 곳으로 오란다. 위치를 확인하고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정말 컸다. 사실 넓게 보면 거기서 거기여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판매하는 각종 수공예품, 음식, 기념품 등 다양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건 과테말라 전통의상! 정말 짐만 안 많고 돈만 많았으면 하나 사서 나도 입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많은 과테말라 여들이 이 의상을 실 생활에서 입고 다닌다.


시장 옆에는 성당이 있었는데 이곳은 마야와 가톨릭이 융합된 독특한 예배의식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많은 관광객들이 의식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향을 피워 흔드는 등 정말 정통 가톨릭이랑은 다른 느낌이 났고 왠지 모를 신비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성당을 보고 나서 왔던 길을 돌아서 가려던 난 느끼고 말았다. 내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 오면서 길을 확인하며 왔는데 어느덧 나는 외딴곳에 떨어져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며 무작정 걸었던 것 같다.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에, 고민하던 나는 시장의 외곽으로 나가기로 했다. 외곽에 나가 한 바퀴를 돌으니 다행히 내가 들어왔던 입구가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거기서 다시 쇼핑을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틈새 길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정말 별걸 다 팔던 시장 풍경들


픽업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계속 돌아다녔고 돌아다니다 보니 주변인들의 선물을 엄청나게 많이 사게 되었다.


이런 과일 모둠도 먹었다. 단돈 5 케찰!


'슬슬 시간이 되었네.' 1시 40분이라는 시간에 맞추어 픽업 장소로 돌아간 나는 내 여행 최대의 멘붕에 부딪히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시간, 내가 기억하는 장소로 돌아갔는데도 불구 셔틀 차량이 안 보이는 것이다. 시장에서 길을 잃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여기가 맞는데, 이 시간이 맞는데?' 내가 기억을 잘못한 건지 영어를 제대로 못 들었던 건지 뭐가 문제였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난 그 장소 근방을 계속 맴돌았고 그렇게 10분, 20분 시간이 흘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디를 찾고 있니? 너 혹시 파나하첼 갈거니?"라고 질문을 건네 왔다. '오 구세주시여!' 알고 보니 그는 다른 투어사의 직원이었고 파나하첼로 가는 벤이 출발 예정이어서 벤의 빈자리를 모객 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얼마가 들든 상관없었다. 난 돌아가야만 했다. 그에게 편도 교통비를 지불하고 난 벤에 탔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난 손발이 떨리고 찔끔 눈물을 흘렸다. 정말 큰일 날뻔한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못 타게 된 셔틀이 괜히 나를 기다리거나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진 않았을지 생각이 들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디 나를 버리고 빨리 출발했기를 바라며 난 파나하첼로 향했다. 벤은  파나하첼의 시내 한복판에서 승객들을 내려주었고 긴장이 풀려 배가 고파진 난 근처 일식집으로 향했다.


돈이고 뭐고 무작정 배가 채워질 양을 시켜먹었다.


정말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 그거 하나에 너무도 감사했다. 이곳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그런 약속이 있을 경우 꼭 정신 차리고 시간, 장소들을 체크해야겠다는 반성의 기분도 들었다.


마음을 추스른 나는 호숫가로 발길을 옮겼다. 오늘은 파나하첼의 마지막 날, 날 울컥하게 만든 아름다운 풍경과 작별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호수의 일몰 전경을 보기로 했다.


해가 지기 전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덕에 데킬라 선라이즈라는 음료를 한 잔 사 마시며 멍 때리고 앉아있었다. 그때 어떤 과테말라 남자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근처 빌리지에 산다며 스스로를 소개했는데 영어가 꽤 되는 편이어서 서로의 직업, 키우는 개 이야기, 다녀온 나라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그 나라 로컬 사람과의 대화라니 꽤나 신선했다.


그와의 대화 덕분에 시간은 빨리 흘렀고 난 그가 알려준 전망이 좋은 곳에서 일몰을 볼 수 있었다. 일몰은 아름다웠다. '저 산과도 고작 3일이지만 정이 많이 들었는데 벌써 끝이라니,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아쉬움이 크게 밀려왔다. 아티틀란 호수가 꽤나 내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자리 잡았었나 보다. 그렇게 난 한참을 노을 지는 아티틀란 호수를 정말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난 숙소로 돌아왔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아쉬운 마음이 크다. 평화롭고 아름답고 친절했던 파나하첼! 여행의 외로움, 걱정 등 여러 생각이 많았던 내게 마치 괜찮다는 말을 해주는 것만 같았던 이곳을 난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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