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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코 Jan 26. 2020

12. 평화로운 줄 알았던 호수에서

과테말라/파나하첼

어제까지 지켜보기만 했던 호수를 오늘은 드디어 가로질러간다. 파나하첼 맞은편에 있는 산 후안, 산 페드로, 산티아고 이렇게 3개의 마을을 둘러보는 투어를 예약한 날이다.


셔틀은 9시에 호스텔에서 날 픽업한 후 모든 여행자들을 모아 선착장 앞에 도착했다. 이후 여행자들과 나는 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넜는데 분명 평화로워 보였던 호수인데 물살이 왜 이렇게 심하게 요동 치는지 난 구명조끼를 붙잡고 '호수의 신이 노한 것이 분명해.' 라며 혼잣말을 했고 그러는 도중 보트는 첫 번째 마을 산 후안에 도착했다.


사실 나는 가이드가 없이 보트로 이동, 이동만 해주는 자유로운 투어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투어 가이드가 루트를 짜서 방문 및 설명을 해주는 투어였다.


 먼저 난 목화 비슷한 식물을 실로 만들어 카펫을 짜는 과정을 설명하는 수공예샵에 방문했다. 실이 되어가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구매할 사람들은 구매를 하고 다음으론 성당 방문과 얼굴 모양 산 구경, 갤러리에 가서 그림 구경.. 사실 이쯤부터 슬슬 지루해졌던 것 같다. 차라리 어제처럼 혼자 앉아 술을 마시는 게 더 재미있던 것만 같았다. 배는 고프고 비슷비슷한 동네 구경을 하는 것에 슬슬 난 지쳐갔다.


그 상태로 간 다음 마을은 산 페드로, 투어가 아닌 그냥 방문이라면 산 페드로는 파나하첼 주변 마을들 중 물가도 제일 싸고 배낭여행자가 머물기 좋은 곳, 일식당 등 맛집이 많은 곳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저 끌려다니는 여행자일 뿐이다.  작은 성당만 하나 들렀는데 2 케찰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마지막 마을은 산티아고, 가이드가 밥을 먹자며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는데 더럽게 비쌌다. 맛도 그냥 그랬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먹었다. 투어의 마지막으론 마을에 사는 전통방식을 잘 보존하신 채 사시는 마리아 할머니를 만났는데 줄을 둘둘 말은 모자를 무려 2분 만에 쓰시는 마술 같은 쇼를 보여주셨다. 나도 모자를 쓰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투어는 끝이 났다.


혹시라도 과테말라 파나하첼을 오실 분이 있다면 투어가 아니라 자유롭게 보트를 타고 마을에 방문하실 것을 추천한다. 100 케찰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한 것이긴 하지만 사실 오늘 글을 뭘 쓰지라는 걱정이 생길 정도로 투어에서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다. 그래도 드넓은 아티틀란 호수를 가로질러 달린 것, 이것 하나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투어가 끝난 후 숙소에 와 잠시 쉰 뒤 배가 고파진 나는 식당에 가기엔 그동안 너무 과소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 큰 마트에 갔다. 신기하게도 마트에선 신라면을 팔고 있었다. 그것도 단돈 7 케찰에! 하지만 난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과테말라 산 라면에 도전하였다. 역시나 한국 라면엔 맛이 못 미쳤지만 익숙함을 탈피하고 새로움에 몸을 던지는 행위는 지금처럼 사소한 일이든 중대한 일이든 한번 해보는 그것 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슬리퍼 바람으로 라면과 오렌지를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여기 온 지 겨우 이틀 만에 벌써 파나하첼 현지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 이런 게 여행이지, 낯선 곳에 살아본다는 느낌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선하고 흥미로운 것 같다. 투어나 관광보다 나는 이런 것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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