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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Aug 22. 2019

빨간머리 앤과 나천재 사이에서


나는 요즘 내 머리스타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하는 그 모두에게 “그건 금기예요! 말하지마세요!”  고 외친다. 최대한 침착하게 최대한 신속하게.

그러나 내말을 들은 어느 누구도그대로 멈추는 법이 없이 없다.

왜 쟤는 저런 스타일로 머리를 한걸까 하는 의문 가득한 눈빛을 한 채로 기어이

“아 왜~ 괜찮은데? 잘어울려.”  하며 내게 위로 비슷한 말들을 한다.

아… 역시 금기를 깨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


'나는 왜 금기라는 말을 써야할까?

자꾸 위로하려는 저 사람들… 나를 아끼는 거 맞는걸까?' 하며 그들의 의도에 대해 물음표를 찍어대고

그들의 말들을 위로라고 치부하는 걸 보며 나 스스로 ‘사람이 이렇게 자존감이 없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니 과민성대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하면서도 또다시 영양가 없는 생각들에 매몰되기 시작한다.


 나는 생전에 커트머리에 뽀글파마를 해본 적이 없다. 새로운 도전인 셈인데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번 머리는 망했다고 결론지어버렸다. 어정쩡한 컬도 그렇고 낯설은 내 모습에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그 스타일이 아니야! 으으...'


그렇다고 당장 미용실로 다시 가서 방금 한 머리를 펼 만큼의 여력은 없는지라 최대한 실망스러운 반응을 적게 맞딱뜨리는 쪽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름 방어진을 친 것이 금기인 것이다.

효과도 없는 이 금기를 언제까지 고집해야할지 고민스러울 때 빨강머리 앤을 만났다.    



빨강머리 앤은 본래 자기의 머리색이 원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앤이 검은 머리카락을 한 제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감에 빠질 정도였으니까.

앤이 이탈리아 장사꾼에게서 검은색으로 머리색을 변신시켜줄 수 있다는 염색약을 사게 되었을 때 스멀스멀 올라오는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저렴히 사게 되어 더 배가 됐던 기쁨은 배신감으로 되돌아왔다.

자신이 꿈에 그리던 검은머리 소녀로 변신 하는 순간, 거울에 나타난 아이는 엉뚱하게도 온통 초록색 머리였던것이다.





그래 절망스럽지. 황당하지. 미치겠지. 아… 짠한 앤. 어느 누구에게도 발견되고 싶지 않았던지, 지하실 계단에 엎드러져 있던 그 아이의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 더 잘 알 것 같았다. 이제는 자신이 빨강머리도 아닌 초록머리 앤이 되어버린걸 감당할 수가 없었겠지.

"내가 니 맘을 잘 안다 앤. 내 맴이 니 맴이여."


이제는 그냥 커트머리도 아니고 뽀글 파마머리가 되어버린 나를 차안의 거울로 부분 부분을 이어보자니 한숨이 나오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졌다. 컴퓨터에는 그런 기능이 있는데 왜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을까 한탄이 나왔다. 집으로 가는 동안 그 환한 낮이 빨리 저물어 밤이나 되어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들고….


스스로 이 땅에서 사라지고 싶도록 만든 게 앤에게 초록 머리카락이라면 내게는 뽀글거리는 머리카락인거다. 앤이 일주일간 머리를 박박 감아봐도 소용이 없는 것처럼 일주일간 린스를 듬뿍 감아봐도 내 뽀글거림은 여전했으니까. 나 역시 학교를 안가고 싶었다.    


앤은 초록색 머리를 잘라내버린 후 검은 머리에 대한 자기의 마음이 허영심으로 채워졌다는 걸 깨달았다.


'허영심이라고?'


허영심이라는 단어 앞에서 내 눈이 멈추었다.

나와 허영심이라니 당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

검은 머리가 되면 남들 보기에 멋 드러져 보이고 기품있어 보일거라고 생각했던  앤. 누군가 나를 보고 시크하고 독특한 매력이 돋보인다 느끼길 원하는 마음으로 파마를 했던 나. 있는 그대로가 아닌 과장되게 멋져보이고싶은 우리의 마음은 분명 허영이 맞는 것 같다.

어쩌면 무척 자연스러운 생각들일지 모르지만 결국 겉으로 보여지는 머리색과 모양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버렸으니까 본래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저만치 쭈그리처럼 내동댕이 쳐졌다고해도 과언이 아닌거다.


거울을 보고있는 앤을 한참을 보았다. 그리고는 도무지 정돈되지 않는 내 뽀글머리를 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뽀글머리, 아줌마 머리를 해도 나는 변치않는 가치를 가진 나인데 마치 전혀 얼굴 못들고 다니겠다고 여겼다는게 기가차다. 한편으로 내가 이렇게나 외모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이라니 내심 놀랍다. 남들의 평가에 과도히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부해왔는데 실상은 반대였다니.

나직한 한숨과 함께 그 마음들을 뱉어 낸다.


앤은 초록머리를 싹뚝 잘라냈지만 나는 그리하기엔 머리가 빡빡이가 될 위기에 놓이니 안되고,

멋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굴레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 할 지에대한 걱정이나 과김히 털어내기로 했다.     




동네 초딩 한명이 나를 보고 자꾸 나천재 같다고 한다.

나천재가 누군지 검색해보고는 이 머리 덕에 재밌는 얘기도 다 듣게 되는구나하고 웃어넘긴다.

당분간 그 소리를 여러 번 듣겠지만 애매하게 잘어울린다는 말보다 사실 기분이 좋다.

어설픈 포장보다 솔직함이 내 마음을 시원케한다.

아마도 빨강머리 앤을 만나지 않았다면 난 그 초딩을 향해서도 금기라고 외치고 있겠지.


고마워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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