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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Aug 29. 2019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인생의 위기를 지나며...

이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날들이 시작되었다. 역시 계절은 정해진 것을 거스르는 법이 없구나싶다. 이제 점점 달이 차오르겠지. 그러면 추석 역시 가깝다는 뜻 일거다.

누군가는 풍요요, 기쁨이고, 대목이며 행복 계절이라고 생각할 이 시기를 지날 때 나는 서늘한 마음으로 그날들을 떠올린다.      


7년 전 큰아이가 돌을 넘긴지 얼마 안되어 남편이 큰 사고를 당했다.

정확히 추석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부리나케 응급실로 향했던 내 눈앞에는 피투성이의 남편이 누워있었다. 병실은 가득찼고, 연휴 때문에 당장 수술도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대기해야하는 답답한 상황 속에 있었다. 


모든 상황이 낯설었다.

내가 왜 응급실에 있는지, 내 남편은 왜 저런 모습을 하고 누워있는 건지, 예정대로라면 내가 지금 돌봐야할 사람은 내 아이인데 나는 왜 남편을 돌보기위해 병원에 와있는 건지, 왜 모든게 엉켜버린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혼자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데 내 앞에는 상의할 남편이 눈을 감고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저녁이 다되어 겨우 병원을 다른 곳으로 옮겨 입원수속을 밟고 제대로 응급조치가 취해진 이후에야 한숨이 새어나왔다.

 

필요한 옷가지들과 물건을 챙기러 잠시 집에 왔을 때 아파트 주차장에서 걸음을 멈추어 문득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많은 집들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파래지다가 곧 꺼매진 하늘을 뚫고 나오는 그 빛 속에 ‘가족’이라는 말, ‘함께’라는 말, ‘즐거움’이라는 말, ‘행복’이라는 말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왁자지껄 무슨 이야기가 그리 즐거운지 몇몇 집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도 마구 쏟아져 내려왔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었다. 모두들 자기의 행복에 바쁜 시간이었기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누군가 쳐다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필요 없는 일이었다. 

내가 서있는 땅 위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문득 밤하늘을 찬란히 채우려 가득 차오른 달이 하는 일은 텅 비어버린 내 마음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게 아닐까싶었다. 세상은 나 빼고도 잘 돌아가고 있었고, 내 세상만 무너져내린 것 같았다. 터져나오는 눈물을 막을 만한 의지조차 없었다. 무너진 마음으로 꺽꺽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유일한 목격자인 달이 괜히 원망스러웠고 미웠다. 

나는 그때 달이라도 미워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을 울고 짐을 싸며 먼나라 얘기 같던 수많은 사고뉴스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안에 감추어져있던 무수한 사람들의 눈물을 떠올려보았다.

남일 같지 않았다. 나처럼 속상한 사람들이 참 많겠지…. 


그때 평면처럼 단조롭게 느껴지던 내 인생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존재하는 것. 평탄하기도하고 생명의 위협이 있는 어려움이 있는 것. 탄식할 때도 미소지을 때도 있는 그 모든 게 인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덧붙이자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는 것도.     


아주 간단하고도 분명한 진리를 나는 경험한 후에야 깨닫게 된거다.

남편이라는 존재를 상실할 위기, 일상이 송두리째 위협받는 사건을 통해 여지껏 눈앞에 있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던 세상을 그제야 조금더 보게 된 것이다. 

외투를 꺼내들게 하는 서늘함 속에서 다시 달을 바라본다. 반추하듯 그 어려운 날들을 다시 더듬어보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어려운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더 굴곡진 면이 생긴다면 기꺼이 또한 감내하겠다는 각오까지 한다.     


마지막으로는 달에게 미워하고 원망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미워할 수 없는 존재를 미워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에게 용서를 구한 탓이라 답을 들을 수가 없지만, 나는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그때..... 달이라도 거기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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