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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Dec 27. 2019

안녕. 나 인생이야.

연말은 역시 정신없어야 제맛!

12월 26일.
아침 6시 20분 알람에 겨우 눈을 떴다. 오늘은 공포의 달 12월이 끝나가는 지점의 아침이었다. 이번 달은 직장에서 중요한 업무들이 연달아 있는 시기이기도 하고 교회에서 성탄절 행사를 맡은 부분이 많아 계속 경보하듯 매일을 지나왔다.

덕분에 집은 개판이고, 인생의 의미가 뭔지 곱씹어볼 여유라고는 없이 그저 살아내는 것 자체가 전부인 시기랄까. 나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시어머니가 집구석 꼴을 보다 못해 남편에게만 청소 좀 하라고 한마디 하셨을 정도이니 이번 달은 좀 심했다.


그렇게 맞은 26일 아침은 내게 곧 새해를 맞이하는 것만 남았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이제 마무리 차원의 일들만 남았으니 무엇을 처리하면 될지 마음속으로 여유를 부려가면서 한참이나 새우처럼 누워있었다. 그때 진동이 한차례 울리고 벨소리가 들렸다. 그건 알람이 아닌 전화였다.


'이 시간에 누구지?' 핸드폰 화면에 엄마라는 글자가 보였다. 수신 버튼을 누르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약간 긴장된 엄마의 목소리에 어떤 예감이 든다.


"라니. 일어났냐?"


 그렇다고 답했더니 "놀라지 말고 들어..."라신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엄마가 저 말 뒤에 하는 이야기들 중 나를 놀라지 않게 한 소식들은 단 하나도 없었음에도 엄마는 항상 저 말을 하시곤 했다.  


"무슨 일인데?" 하고 물으니 "아빠가 아픈가 . 병원에 가야겄는디. 니가 좀 챙겨봐. 내 말은 듣도 않는다." 하신다.
웬만한 통증도 참으시고, 웬만한 치료는 시간에 맡기시는 아빠가 아프니 병원에 모셔야 한다는 이야기는 꽤, 많이, 겁나게 아프시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대학생 때 나무를 자르는 전동톱(?) 같은 기계에 다리를 베어 3센티가 살이 벌어져놓고도 기어이 병원을 안 가시고 일명 빨간약으로 버티신 분이 내 아버지이다.

그러니 내 머릿속에 삐요삐요 빨간 불이 들어 온건 당연지사다.


이어서 아빠와 통화를 해보니 가슴께가 콕 콕 쑤셔와서 며칠 전부터 고생을 하고 있으시단다. 특히나 간밤에는 계속 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라고 아무래도 대상포진 같다고 하신다.
대상포진이라니. 듣자마자 골치가 아프다. 대상포진 전문 병원으로 모셔서 입원을 하셔야 하나? 외래진료부터 받으셔야 하나? 그게 원인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짧은 시간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외래진료로 결론을 내리고 급히 컴퓨터를 켰다. ㅇㅅ병원에 접속해 예약하려고 하니 회원가입부터 하란다. 아버지께 다시 전화로 주민번호를 여쭤보고 회원가입을 했더니만 환자 번호가 웬일인지 조회가 안었고, 결국 예약을 못하게 돼버렸다.

이런 사발면!


전화예약도 한 시간 후인 8시부터나 된다기에 부리나케 아이들 아침상을 준비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나는 시속 140킬로로 달리는 출근길 위에서 전화로 예약을 마쳤다. (아빠가 들으시면 놀라 기함을 하시겠지만..)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일을 가지치기해서 오전 내에 해야 했다. 그 사이에 30건의 지출을 처리해서 업체에 약 천만 원의 대금을 처리하고, 은행에도 다녀왔다. 오전 11시부터 내리는 눈은 나를 심난하게 했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눈이 왜 하필 오늘 오니? 난 오늘 갈 길이 멀단 말이다.'


실장님이 부럽기라도 한 듯  얘기하신다.

"라니 씨는 눈 오는 날 일찍 가니까 좋겠당~"

내가 분명 병원 모시고 간다고 했음에도 약 올리듯 저래 얘기하고 싶을까... 오늘 사발면이 여러 번 생각이 난다.


조퇴를 하고 출근길과 마찬가지로 140킬로로 슝슝달려 겨우 진료시간에 맞추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도착했다.

시골에서 오빠가 아버지를 모셔오고

그런 아버지를 중간에서 만나 내가 모신 것이다,



진료실 앞 의자에 앉으니
'대상포진 예방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피부가 벌겋게 울퉁불퉁 수포가 올라온 사진이 있는 배너가 하필 우리 앉은자리 앞에 있었다.

예방주사를 맞았지만 대상포진에 걸린 우리 아빠는 어떻게 해줄 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25분이나 지나서 친절한 의사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통증은 있지만 수포가 없어서 대상포진으로 확진할 수가 없다는 허무한 말을 들었다.


왼쪽 가슴이 아플 다른 질병은

1. 심장의 문제?

2.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신경의 문제로 인한 통증?

정도란다.


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은데 수포가 없어서 대상포진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돌고 도는 대화 끝에 치료약이 아니라 진통제밖에 처방받을 수 없다는 얘길 듣고 또다시 허무해졌다.


아! 시골에서 아버지가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없게 되었다. 아버지를 모셔다 드린 오빠의 바쁜 일과 속의 수고가 의미가 없어질 위기에 놓였다. 오늘 하루를 140킬로로 달려온 나의 고생이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다.


초기이지만 곧 발병하게 되면 다시 올라오기 힘든데 어떻게 하나. 시골에서 처방해주는 약은 이곳에서 처방받는 약과 또 다르다. 미리 약을 쓰면 왜 안 되는 것인가. 설득 아닌 설득 끝에 항바이러스제와 항생제가 든 연고를 추가로 처방받았다.


아니..... 약을 처방받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진료를 받고 나와서 아빠와 나는 웃고 말았다. 협상을 성공리에 체결한 것 같은 기분은 나만 느낀 게 아닌 거였다.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가족들에게 전화로 진료내용과 처방을 전해주고는 다시 아빠를 모시고 친정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비도, 눈도 오지 않았다. 아빠는 여전히 끙끙대셨다. 2~3분마다 욱신하고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괴로우신 모양이다.


어차피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못 참으시니 집에서 푹 쉬시며 요양한다 생각하고 어디 가지 마시고 연말에 푹 쉬시라 했다. 그러마고 약속하신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니 참 이상했다. 내가 아플 때마다 아빠 차를 타고 병원에 갈 때면 그 순간부터 벌써 내가 낫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는데, 오늘 아빠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아빠의 상태는 앞으로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초반이지만 그냥 항바이러스제를 드시는 게 낫겠다고 말씀드리고 왔다. 밤새 괴롭히던 통증이 알 수 없는 질병이 아니게 되었으니 이제 아빠의 마음에서 두려움은 사라졌을 것이다. 고통을 누그러뜨릴 약들이 곁에 있으므로 이제 맘 놓고 자리에 누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언제라도 병원에 데려갈 가족들을 확인했으니 걱정이 덜어졌을 것이다. 그것으로 일단 충분한 처방이 된 게 아닐까...
 
이제 송구영신. 2020년만 맞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게 빙긋이 웃음지은 인생이 말한다.


'안녕? 나야! 인생. 끝난 것 같아도 끝이 없단 거 알잖아? 긴장의 끈... 놓지 마.'
 


속으로 답한다.
'알겠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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