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니 Jan 07. 2020

꽃상추 맛 나는 엄마

난데없이 터진 눈물샘


나는 어릴 적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농사 일로 들에서, 부모님은 회사 일로 직장에 계셨다. 오빠는 나 아닌 다른 사람과 놀아야 되는 이유로 대게는 해가 져야 집에 왔다. 물론 퇴근한 아빠보다 더 늦게 온 적도 많았다.


시대의 영향일까, 내가 사는 마을에서만 나타난 현상이었을까. 나는 우리 시골 동네에서 맨 막둥이였고 내 친구나 동생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은 내게 비극이었다.

동네 언니 오빠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고 싶어 했고 어쩔 수 없이 깍두기로 나를 끼워서 놀이를 해야 할 때마다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내비치곤 했다. 눈물 젖은 빵에 버금가는 그 눈칫밥을 안 먹어 본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아… 그 서러움이란!

오죽하면 나를 1년만 더 일찍 낳지 왜 그때 낳았느냐고 엄마에게 원망을 쏟아냈겠는가.


그런 탓에 어릴 때를 떠올리면 즐거운 기억보다 혼자 있던 장면들이 더 자주 떠오른다.

슬펐던 마음도 함께 버무려져 심난해지기도 일쑤다. 서른 중반쯤 되었으니 좀 괜찮아졌다고 믿었는데 엊그제 꽃상추를 먹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버렸다.

난데없이 꽃상추가 옛 기억을 소환해버렸다.     



낮잠을 자면 세상은 잠들지 않고 나만 잠든 거라 모든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려왔다.

컹컹 개 짖는 소리도, 탓타타타 시끄러운 경운기 소리도, 동네의 누가 뭐라고 외치는 고함소리도 내겐 온통 미운 소리들이었다. 낮에 든 잠은 자는 중에도, 깬 후에도 영 개운치 않고 원인모를 불안함이 남았다.

소리를 나쁘게 느끼게 하는 낮잠이 싫었다.

아이들이 자다 깨서 우는 이유는 내가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나를 둘러싼 공기가 한없이 서늘하고 위협적인 느낌이 드니까.

그런 탓에 낮잠에서 깰 때는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풀릴 때까지 어느 때까지고 엉엉엉 크게 소리쳐 울어버리고 싶었다. 그치만 정작 그렇게 한 적이 있었나?

내 기억엔 없다.


낮잠에서 깨어나 울음을 참은 적이 많았다. 어린아이가 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나를 좀 도와달라고 외치는 말과 같은 것인데 나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곁에 없다는 걸 이미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울고 싶지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결국 울음을 참아버리는 것은 어두운 구멍에 내 몸을 욱여넣는 기분이었는데...

서른이 지나서야 그 시간들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의 이름이 외로움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9살이었을 때 학교를 마치고 와서 혼자 큰방에서 까무룩 낮잠이 들었다.

해가 지면서 방문 앞 마루에도 점점 빛이 달아나고 나는 또 슬픈 마음으로 깨어났어야 보통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 날만은 달랐다.

낮잠 자고 있는 내 곁에서 언제 오셨는지 모를 엄마가 밥을 드시고 계셨다. 본인이 좋아하는 꽃상추를 사 오셔서는 맛있게도, 정말 맛있게도 드셨다. 언제 들어도 엄마의 씹는 소리는 정말 무엇이든 맛나게 느끼도록 들렸다. 엄마가 잠에서 깬 나를 보자 입에 밥이 가득한 채로 물으셨다.


“라나. 너도 먹을래?”


세상 담백한 엄마의 안부인사다. 언제 왔는지, 왜 지금 집에 와있는 건 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렇다 해도 엄마의 존재 자체로 모든 말들이 대체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존재의 기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엄마 앞에 마주 앉아 상추에 밥을 가득 올려 된장을 더해 입에 가득가득 채웠다.

상추쌈을 싸 먹고 또 싸 먹고. 엄마랑 참 맛있게도 밥을 먹었다.     


그 후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와 꽃상추 때문에 나를 기다리던 외로움은 오지 못하고 저만치 달아나버렸다는 것만 분명히 안다.

     

나의 외로움은 현재 진행형인 것 같다.

그런 시절도 있었지 하고 지나가지 못하고 기억 끝에 결국 울고 나서야 진정되니까. 에휴.

언제까지 이렇게 울까?  밥상머리에서 쌈을 싸 먹다가 엉엉 우는 나의 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하면서도 짠해하는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을 앞으로는 덜 봤으면 좋겠다. 스스로 그 기억에서 조금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꽃상추를 보며 문득 생각해본다.


나는 외로움을 떠올린 걸까?

엄마를 떠올린 걸까?

아무래도 전자인 것 같다.


앞으로는 엄마를 떠올리기로 마음을 돌려보기로 한다. 그러면 꽃상추를 먹을 때 슬프지 않고 괜찮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오면 나는 꽃상추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땐 마음속으로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해야지.    


‘꽃상추를 씹으니 엄마 맛이 났다.’

작가의 이전글 안녕. 나 인생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