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니 Apr 13. 2020

모 작가에 대한 부러움

내가 글을 쓰고픈 이유들

모 작가의 강연회에 다녀왔다. 그녀는 아동문학에서 요즘 잘 나간다고 인정받는 중에 한 명이다. 작품수도 많거니와 인기도 상당하다. 그분이 하는 작가가 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군분투기를 듣고 나니 역시 쉽게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 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녀는 직장생활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고 건강문제와 정신적인 부담이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했다.

공모전에 출품을 한 후 발표일이 가까워질수록 불안 초조 예민 3종 세트를 겪는 것과 연락이 오지 않고 명단에 내 이름이 없을 때 겪는 좌절과 낙담, 자존감 하락을 들을 땐 슬며시 공감이 되었다. 고작 내 두 번의 출품으로 저 모든 과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녀는 인생의 위기라고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고 한다.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글쓰기에 전념했다고. 매일 산책을 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들 속에서 이야기를 엮어 갔다고. 그렇게 책이 한두 권씩 이어지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는데 여간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 후 내 안에 떠오르는 단어를 나는 애써 꺼버릴 수 없었다.


‘휴직’


나도 글에 전념하려면 휴직하고 좀 써볼까 하는 생각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여보! 나 나머지 휴직 좀 해야겠어! 나 글 좀 쓰려고!” 선언하는 상상까지 몇 초나 걸렸을까. 그러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글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는지…. 문득 어이가 없다.     


어릴 적부터 책과는 담을 쌓았고, 글짓기 대회라고는 나가본 적도 없고, 글쓰기는 숙제로 매일 써야 하는 일기가 전부인데 그마저도 그제와 어제, 그리고 오늘을 ‘복사하기’ + ‘붙이기’ 하듯 써 내려갔던 나 아니던가. 방학 숙제 중 독후감이나 글짓기 대신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려 내버리는 게 내 선택이었단 말이다. 이제와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대체 왜 글을 쓰려고 했던가. 나는?    


첫 번째, 가족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특히 그 대상은 나의 아버지였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이 세상에서 숱한 상처를 받고도 강한 듯 살아가는 그가 가여웠다. 그리고 응원하고 싶었다. 그의 삶은 많은 의미가 있노라고 산재해있는 어려움들을 또다시 잘 넘고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격려를 하고 싶었다. 내가 간혹 써드리는 편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글로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어려움을 겪은 누군가도 잠시 마음이 쉬어가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


두 번째, 내가 글을 아예 못쓰는 건 아니라는 ‘약간의 소질’을 발견한 탓이다. 내가 재미를 느끼고, 나의 두 아이가 무척 좋아했던 동화연극을 하다 깨닫게 된 것이다. 대본 만들면서 기존 이야기를 요리조리 바꿔가고 대사를 지어낼 때의 성취감도 물론 좋았지만 그것에 반응하는 관객(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 일상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카타르시스가 몰려왔다. 이거 꽤 재밌네? 미소가 지어지는 그 기분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세 번째, 동화는 쉬워 보였다. 동화의 종류가 다양하긴 하지만 분량이 짧은 측에 속했고, 그림(삽화)들의 도움이 있는 동화는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비교적 도전해봄직했다. 길이가 짧다고 해서 쉽고 간단할 거라 착각한 것은 내가 무식했기 때문이지만, 덕분에 평생에 하지 않던 이런 고민들을 할 수 있어 감사하기도 하다.


네 번째, 변화가 필요해서. 평생 공무원이라는 직업 속에서 숫자가 무의미한 나라는 사람이 회계 업무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삶의 다른 원동력을 만들고 싶었다.    


마지막으로는 글을 제대로 읽게 해 준 동화에게 고마워서다.


나는 글을 읽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걸 전문적 용어로 난독증이라고 하던데, 그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학업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공무원 시험도 상위권으로 합격했던 탓에 나는 그저 괜찮은 사람이라고 포장되어있었지만 사실 내게 깊은 고민이 있었다. 글을 읽어도 도무지 머릿속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학과 공부는 반복해서 외워버리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에 시간과 엉덩이(?)만 투자하면 되었다. 이른바 맞고 품기 식으로 공부를 했다.


그러다 1차 위기를 맞았다. 교육학 관련 수업 중 전공서적을 읽고 요약해서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했다. 주말 내내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을 해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은 채로 진행한 나의 발표는 당연히 엉망진창이었다. 친구들의 갸우뚱거림과 교수님의 질책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정교사 자격증을 받을 자격과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날 제대로 알았다.


2차 위기는 발령을 받고 난 이후부터 계속이었다. 공문 내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당장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잘 모르겠어서 여기저기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물어물어 해결해가야 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그러다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을 했고 공무원이 내게는 맞지 않는 직업인 것 같아 그만두고 싶어 남편과 여러 차례 의논을 하기도 했다. 매일이 곤욕이었던 그 공간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면 딱 적당한 표현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육아에 전념했다. 집에 있는 것이 너무나 좋았고, 그 시간 동안 아이들과 책을 많이 읽었다. 나의 유년기와 다르게 아이들은 심심하면 자연스럽게 책을 들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햇살이 은은히 드리워진 거실에서 뒹굴 뒹굴 책을 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계속 읽다 보니 동화책은 재미도 있거니와 따뜻한 이야기를 짧은 글로도 아름답게 풀어내는 보물상자와 같았다. ‘아 이런 기발한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지? 어디서 아이디어 열매가 열리나? 나도 좀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숱하게 했고 아이들만의 책이라고 치부되는 게 정말 아쉬울 지경이었다.

“누가 동화를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라고 하였는가! 누가 그런 소리를 하였어!” 궁예처럼 호통을 치고 싶은 나, 아이들보다 먼저 키득키득 웃고 눈물 콧물 쏟는 나를 설명할 길이 없어지니까 말이다.     


그 시간들이 축적된 덕분인지 어느 순간부터인지 글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난독증이 없어졌다. 다시 직장에 복귀해서 업무를 하고 있는 내게 더 이상 내가 담당자로 지정되어있는 공문을 볼 때마다 두려움은 밀려오지 않는다. 두꺼운 책들을 보아도 이제는 겁이 나지 않고 손을 뻗어 감히 책장을 열어보게 되었다.


동화! 만세 만세 만만세!!     


내 이름이 ‘혜란’이다. 은혜 혜자에 난초 란자다.

무슨 의미인지는 아마 죽을 때까지 정확히 모르겠다. 부모님이 혜란이라는 이름이 예뻐서 지었다고 하니까.

은혜 갚은 난초가 되라는 건가. 은혜 갚은 까치는 알아도 난초는 모르겠다만....

내게 글을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동화에게만큼은 꼭 은혜를 갚고 싶다.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동화를 어떻게 쓸지는 앞으로의 과제가 되겠지만 왜 쓰려고 하는 지를 계속 생각하다 보면 괴롭지만은 않을 것도 같다.    


동화야!

은혜 갚은 난초가 되게 해 줘!

작가의 이전글 꽃상추 맛 나는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