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음악과 함께라면
저는 도쿄의 중고 레코드 가게를 좋아합니다.
유학 시절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아오야마잇쵸메역에서 시부야까지의 거리를 매주 왕복한 유일한 이유도 시부야에 있는 레코드 가게들을 둘러보기 위해서였어요.
세계에서 레코드에 대한 정보량이 가장 풍부했던 곳이라는 시부야는 저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매주 주말이 되면 시부야의 주요 레코드 가게를 모두 다니면서 그 곳에 흐르는 음악과 청음기에 세팅된 추천 음악들을 모두 들었습니다.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음악을 풍족하게 즐기고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시부야나 진보쵸에서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보내라고 하면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문을 닫는 곳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정말 다양한 스타일의 중고 레코드 가게가 있거든요. 그리고 주변에 잠시 들릴 수 있는 서점이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갖춰져있어서 여러 가지 관심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거나 자주 가는 곳을 질문받으면 항상 앞서 언급한 두 지역을 말씀드리고는 해요.
요즘은 주로 업무로 도쿄에 다는 일이 많아서 가끔 일행과 함께 다니다가 갑자기 시간이 잠깐 남아서 레코드 가게에 들리는 정도 밖에는 시간이 나지 않는데요 그럴 때는 항상 어떤 카테고리에 있는 음반들을 봐야할지 결정하지 못해서 그냥 발걸음을 돌린 적이 자주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주 잠깐 들릴 때 한정된 시간내에 찾아볼 수 있는 뮤지션들을 정하게 되었어요.
기준은 꽤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오랜 활동 기간동안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스타일을 자신의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도쿄에서는 브라질 음악을 주로 찾아보는 저에게는 요즘 시간이 날때마다 체크하는 뮤지션은 세르지오 멘데스(Sergio Mendes)와 마르코스 발레(Marcos Valle) 입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오랜 세월 동안 음악계의 최전선에서 당시 젊은이들이 좋아할만한 음악들을 한 발 빠르게 도입한 것을 들 수 있어요. 그런 이유에서인지 지금까지도 이들의 다양한 곡들이 브라질 음악의 클래식으로 전세계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이 두 뮤지션의 시대별 음악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먼저 세르지오 멘데스에요. 지금부터 10여년전에 블랙 아이드 피스와 함께 발표한 이 곡으로 전세계를 강타한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아마도 브라질 음악이나 힙합을 잘 몰라도 당시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통해 익숙하게 느끼시지 않을까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MOU9YLvHDg
원곡은 1966년에 SERGIO MENDES & BRASIL'66 으로 데뷔하면서 발매한 앨범에 수록되어 있어요. 블랙 아이드 피스와의 버전이 큰 인기를 얻어서인지 한동안 여름만 찾아오면 서울의 카페에는 이 곡이 흐르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05w5ch9l6zI
하지만 10대 시절 재즈와 보사노바의 영향을 받은 세르지오 멘데스가 미국으로 활동 거점을 옮기기 시작한 1965년에 발표한 음악들은 정통 보사노바와 당시 브라질에서 유행한 재즈삼바 라는 스타일의 트리오 형식의 아직 남아있던 음악이었어요. 세르지오 멘데스가 브라질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이 어떤 모습인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upW31iELLE
미국 진출을 한 이듬해인 1966년에 BRASIL'66를 결성하고 A&M 레코드에서 앨범을 발표하면서는 소프트락 이라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코러스가 들어간 팝 음악 스타일을 주로 들려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F4pN19mXws
1970년대의 BRASIL'77 은 AOR 스타일의 음악이에요. 당시 여러 장르의 음악들이 서로 가까워지고 있던 '크로스오버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준 세르지오 멘데스가 21세기에는 힙합과 만나게 된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VXgxS6rsPo
이번에는 마르코스 발레 입니다. 세르지오 멘데스의 Mas Que Nada 처럼 여름이 찾아오면 세계 곳곳에서 들리는 1968년 발매작인 이 곡의 주인공으로 유명합니다. Verve 레이블에서 나온 앨범으로 미국에서 크게 사랑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브라질 싱어송라이터로 주목받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0MYAK-k6XM
같은해 브라질 ODEON 에서 출시한 작품에는 이런 곡도 들어있습니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뒤를 잇는 보사노바의 새로운 스타로 미국에 소개된 주인공다운 아름다운 보사노바 입니다. 술을 못 마시는 저에게는 도쿄에서 주말 오후에 산책을 할 때 잠시 혼자 커피를 마시면서 거리 풍경을 바라볼 때 자주 듣는 음악이기도 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sM7acQKKPAc
1970년대에 들어서면 일렉트릭 기타와 신서사이저를 도입한 실험적인 브라질 팝 음악을 선보이게 됩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하고 있던 재즈와 락이 결합한 음악이나 브라질의 새로운 팝 경향인 MPB 의 동향과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jS6zlLcy1Y
이런 음악을 하던 마르코스 발레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울과 훵크 스타일을 토대로 만든 AOR과 가벼운 댄스 음악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즈음에 브라질의 TV 프로그램에 에어로빅 강사로도 출연해서 유명해졌다고 해요. 아마도 지금의 브라질 젊은 세대들은 마르코스를 뮤지션보다 에어로빅 강사로 알려져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m1dJlh76f9c
1980년 후반부터 앨범 활동이 뜸했던 마르코스 발레가 2000년대에 새로운 음악을 발표한 곳은 런던을 기반으로 하는 클럽/라운지 팬들에게 유명한 Far Out Recordings 이었습니다. 아마도 마르코스 발레를 데뷔 당시부터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상당히 낯설은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21세기의 DJ를 위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JLVbkHieaM
아마도 브라질 뮤지션들 중에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넓은 스펙트럼의 스타일을 선보이며 세계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은 주인공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어느 앨범을 구매하더라도 당시 시대의 가장 높은 품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에게는 도쿄를 다니다가 '잠깐 10분만 레코드 좀 보고 올께' 라고 이야기해야 할 경우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 뮤지션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