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한 유명 선곡가는 쳇 베이커(Chet Baker)의 ‘Sings’ (1956)에 대해 ‘여자 친구들에게 선물해서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앨범’이라는 소개글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음악을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있어서 이만큼 이성에게 선물하기 좋은 앨범이 나왔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앨범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쳇 베이커의 약간은 수줍은 듯한 미성의 목소리와 중간중간 들리는 편안한 트럼펫 연주일거에요. 1956-57년 사이의 앨범 몇 장에서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음악들입니다.
서울에 돌아와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신주쿠 무사시노관(新宿武蔵野館)에서 쳇 베이커의 마지막 몇 일간을 담아낸 영화가 개봉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전기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생활의 영향이 있어서인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Sings’ 시절의 맑고 수줍은 느낌은 점차 사라지고 쓸쓸함, 외로움과 같은 그늘진 분위기가 음악에서 묻어 나오게 됩니다. ‘Sings’를 계속 듣다가 갑자기 CTI에서 나온 유명한 작품인 ‘She Was Too Good To Me’ (1974)를 들어보시면 목소리에서도 음악에서도 젊은 시절의 느낌이 사라져 버린 것을 느끼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리고 영화에서 등장하는 그의 말년의 모습에서는 그런 그늘이 더욱 짙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로 읽어도 중간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을 정도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정도니깐요. 굳이 그걸 영상으로 확인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도 해서 영화를 놓친 것이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마약, 여성편력, 채무 등으로 얼룩진 그의 사생활이 과연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리고 서울의 여러 핫플레이스에서 ‘Sings’의 아날로그 레코드가 보이는 풍경을 접하면서 ‘한 사람의 예술 작품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도 던져봤습니다.
지난 도쿄 출장에서 유일하게 찾은 재즈킷사인 나카노의 rompercicci에서 마스터님이 쳇 베이커의 ‘Embraceable You’ (1957) 레코드를 틀어주셨습니다. 그의 사후에 발굴되어서 1995년에 발매된 작품으로 아날로그 레코드는 재작년에 나왔다고 해요.
무심하게 내려주신 듯한 담백한 느낌의 커피에 우유와 시럽을 넣고 펜네와 함께 음미하면서 귀를 기울여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역시 1957년의 쳇 베이커는 어김없이 약간은 수줍은 듯한 미성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평단의 평점은 지독하게 낮게 나온 듯 하지만 ‘이성에게 선물하기 좋은’ 마성의 목소리와 연주는 어김없이 빛을 내고 있었어요. 뭔가 이 시기의 그의 음악만은 계속 남아줘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