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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다반사 Oct 27. 2018

할로윈에 생각하는 것

자연의 달콤함이 마음에 드는 아사쿠사(浅草)의 명과(銘菓)


아오노 켄이치 (BEAMS 창조연구소 소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자연의 달콤함이 마음에 드는 아사쿠사(浅草)의 명과(銘菓)


얼마 있으면 할로윈이다. 요사이 일본에서는 코스프레를 하고 거리를 누비거나, 할로윈을 이유로 파티를 열거나 하는 일들이 정착되어 있는 모습이지만 내가 10대였던 시절, 다시 말해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는 할로윈이라면 뭐라 해도 영화였다. 존 카펜터 감독이 만든 ‘할로윈’이다.  


영화 ‘할로윈’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잠시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두자면, 다양한 기술의 진보는 있었으나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 이 시대에는 세계 곳곳에 많이 있었다. UFO, 심령현상, UMA, 초능력, 문명의 손때가 묻지 않은 소수 민족의 풍습 등이 TV와 잡지라는 미디어를 통해 많이 다뤄졌다.


투쟁과 혁명의 계절인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서 미국을 중심으로 대두한 히피 무브먼트는 “LOVE & PEACE” 의 사상과 함께 많은 컬트 종교를 낳았지만, 그러한 정통 기독교와 상반되는 존재가 표면화되어 가는 것을 뒷배경으로 오컬트 붐은 퍼져가게 되었다.


일본에 있어서는 기독교와의 이항대립이라는 도식보다는 고도 경제 성장을 끝내고 안정된 성장기에서 버블 시대로 옮겨가는 가운데 자극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던 듯한다. 1972년 2월 ‘아사마 산장 사건(あさま山荘事件, 역주 :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의 아사마 산장에서 벌어진 연합적군의 인질 사건)’은 TV 중계에 의해 각 가정에 나오게 되었는데 (나도 TV로 본 기억이 있다), 이 사건의 결말 (인질 무사 구출, 범인 전원 체포)로부터 사회 분위기가 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관심이 식었다고 해야 할 이러한 시대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가상적인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현실을 초월한 것으로 옮겨갔다. 1973년에 간행된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까.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현재 명작이라고 칭해지는 오컬트 영화, 호러 영화가 양산되었다. 윌리엄 프리드킨의 ‘엑소시스트’가 1973년,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이 1974년, '오멘'과 '캐리'가 1976년, 조지 로메로의 '좀비'가 1978년과 같이 실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한 뛰어난 작품들이 등장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1978년에 공개된 것이 ‘할로윈’이다. 사람 얼굴을 모방한 하얀 가면을 쓴 살인마 마이클(=부기맨)의 모습은 강한 인상이어서 당시 아이였던 내 기억에 확연히 새겨지게 되었다. 코스프레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부기맨이 섞여있어도 모르겠다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무섭다.


영화 ‘할로윈’은 글자 그대로 할로윈 전후의 이야기라서 오프닝 크레딧과 타이틀 주변에는 호박이 배치되어 있다. 눈, 코, 입을 뚫은 호박 속에 흔들흔들거리면서 타고 있는 촛불도 이 영화에서 보면 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쁜 인상이다. 이 시기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호박, 호박, 호박이라는 분위기라서 무심코 영화에 대한 내용이 떠오르지 않도록 조심하려고도 한다.


그렇다, 이 시기는 호박, 호박, 호박인 것이다. 특히 양과자, 화과자 가게에서는 눈이 닿는 곳마다 호박 관련 상품이 할로윈 기분을 고취시키는 디스플레이와 함께 늘어서 있다. 하지만, 호박은 속재료와 크림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듯해서 의외로 호박의 원형을 담고 있는 것은 적은 인상이 든다. 확실히 껍질이 붙은 채로 있는 호박이라면 끓여서 만드는 음식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등의 생각을 했었는데, 있었다.


1854년,  센소우지(浅草寺)의 별원(別院)인 바이온인(梅園院) 한켠에 다실을 열은 것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노포 디저트 가게 ‘우메조노 (梅園)’는 아와젠자이(あわぜんざい)로 잘 알려진 가게. 현지도 아사쿠사에 본점을 두면서 백화점 몇 곳에도 화과자 매장을 내고 있다. 얼마 전 시부야(渋谷)의 ‘토요코 노렌가이(東横のれん街)’를 찾았을 때, 이 우메조노 매장에서 ‘호박 양갱 (かぼちゃ羊かん)’이란 것을 발견한 것이다.


황금색 양갱 위에는 얇게 저며진 호박 한 조각이. 올려져 있다, 라기보다는 파묻혀 있다는 쪽이 정확하다고 할까? 잘라서 먹어보면 단 맛은 약간 적은 편으로 호박 껍질의 쌉쌀한 맛도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것이 좋다. 우메조노에는 이 ‘호박 양갱’ 외에도 밤 양갱, 고구마 양갱, 호두 양갱, 또한 선물용으로 이 제품들을 한데 섞어서 담은 것도 있다. 취향과 용도에 따라 고를 수 있지만 역시 요즘 계절에 선택하는 것은 호박이 아닐까?


할로윈에 존 카펜터의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앞서 적은 대로지만 할로윈에 따라다니는 호박 이야기라면 쿠라하시 유미코(倉橋由美子)의 ‘호박 기담(カボチャ奇譚)’을 들어두고 싶다. 이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 ‘쿠라하시 유미코의 괴기 장편 (倉橋由美子の怪奇掌篇)’ (지금은 ‘어른들을 위한 괴기 장편(大人のための怪奇掌篇)’으로 제목이 바뀌어 문고화 되어 있다)은 1983년부터 84년에 걸쳐 ‘부인과 생활(婦人と暮らし)’에 연재된 20 작품을 모은 것이다. 장편이라고 적혀 있듯이 이야기 하나하나는 간결하지만 다들 기묘한 맛을 남긴다.


‘호박 기담’은 어느 나라의 옛 재상인 아보보라 씨 (말할 것도 없이 ‘아보보라’는 호박의 다른 이름)가 현역 시절부터 ‘호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별명의 유래는 몇 가지가 있는 듯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아보보라 씨는 단신이면서 머리가 크고 그 형태가 오렌지색의 호박과 닮았다는 것과 함께 그 내용물에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멍청하다, 그래서 호박이라고 부른다’. 이 아보보라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저 세상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판결. 생전에 어리석은 짓을 한 죄가 있으니 당신을 호박으로 만든다. 이상’. 납득할 수 없던 아보보라 씨지만 과거에 호박으로 만들어진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있었다는 것을 듣고서 아주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기분이 되었다.


그 후, 아보보라 씨는 무슨 이유인지 자신의 장례식에 서있게 된다. 아무래도 무언가의 착오로 저 세상에서 되돌아오게 된 듯한다. 놀란 참석자들은 허둥지둥 기자 회견을 그 자리에서 열었다. 아보보라 씨가 저 세상에서의 일을 설명하니 참석자들을 이 ‘부활’과 ‘죽음으로부터의 생환’에 흥분하고, ‘기적의 생환자’ 아보보라 씨도 연설을 했다. 하지만, 이윽고 그에게 이변이 생기고, 얼굴은 팽창해 ‘호박에 눈과 코’ 상태로, 손발과 몸통은 어느샌가 그 팽창한 머리 부분에 빨려 들어가 결국 아보보라 씨는 호박이 되어 버렸다.


이야기는 아직 조금 더 남아있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기나긴 가을밤에 꼭 책을 읽고서 기묘한 여운을 확인해보셨으면 한다. 독서의 친구로는 떫게 내린 녹차와 ‘호박 양갱’을.



호박 양갱 (かぼちゃ羊かん)

아사쿠사 우메조노 (浅草梅園) http://www.asakusa-umezono.co.jp/



※ 2015/10/24 ippin 게재 원고로 본문 내 정보는 게재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https://ippin.gnavi.co.jp/article-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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